강원도 원주시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인 데다 수도권과 1시간 거리에 있어 뛰어난 접근성을 자랑하고 있다. 신라→고려→조선 시대 동안 지역 거점 역할을 하며 강원 남서부 문호이자 물산 집산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여기에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문학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시간의 깊이를 품은 강원감영, 문학의 향이 듬뿍 묻어 있는 박경리문학공원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물산의 집산지는 남한강과 섬강(蟾江)이 만나는 부론면 흥호리 은섬포(銀蟾浦)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에서 발원해 원주를 지나 충북 충주에서 흘러오는 남한강에 몸을 섞는다. 이곳에 고려와 조선 시대 관청의 창고인 흥원창(興原倉)이 있다. 고려 13개 조창(漕倉) 가운데 한 곳이다. 원주·평창·영월·정선·횡성 등 영서 남부 5개 고을 세곡과 강릉·삼척·울진·옛 평해 등 영동 남부 4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보관했다가 서울의 조창인 경창(京倉)으로 운송하는 중요 거점이었다.
남한강을 통해 오간 중요한 물품 중에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식품인 소금도 빼놓을 수 없다. 강원도 산간 내륙지방에서 구하기 힘든 소금이 가고 서울에서 궁궐 등 건축물을 지을 때 필요한 목재가 산간지대에서 왔다. 조선 후기에 관선조운(官船漕運)이 쇠퇴하고 사선업자(事船業者)에 의한 임운(賃運)이 행해지면서 그 기능은 쇠퇴했다.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이름을 새긴 돌이 옛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넓은 강물 위로 떨어지는 해가 억새와 함께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는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해넘이 명소로 소문나면서 이곳에 조운선 모양의 전망대와 편의시설이 설치 중이다.
섬강을 따라 상류로 오르면 삼산천과 만나는 지점에 원주의 대표적인 유원지인 간현관광지가 있다. 강물 양안으로 40∼50m 높이의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최근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탈바꿈했다. 지상 100m 높이에 길이 200m의 산악보행교인 출렁다리와 404m의 보행현수교인 울렁다리, 잔도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최근 또 하나의 명물인 에스컬레이터가 들어섰다. 산악용 에스컬레이터로는 전국 최초이자, 최고 높이(100m)이면서 최장(200m)이다. 울렁다리를 건넌 뒤 편안하게 내려오면서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설치됐다.
남한강과 섬강의 뱃길은 요즘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강원도 관찰사가 부임할 때도 이용됐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여주까지 육로로 이동하고 이후 남한강과 섬강의 물길을 따라 원주천 배말 나루터에 도착해 가마를 타고 강원감영에 도착했다고 한다.
송강 정철(1536~1593)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도 이용됐다. 1580년(선조 13년) 44세에 경복궁에서 임명장을 받고 떠난 송강은 가마와 배를 타고 원주에 닿는다. 그가 쓴 ‘관동별곡’에 ‘평구역 말을 가라 흑슈로 도라드니, 셤강은 어듸메오, 티악이 여긔로다’라며 섬강의 절경을 읊었다. 평구역은 남양주, 흑슈는 여주, 셤강은 섬강, 티악은 치악이다.
원주에 당도한 관찰사는 일산동에 있는 ‘강원감영’으로 갔다. 감영의 중심 건물인 ‘선화당(宣化堂)’이 남아 있는 곳은 전국에서 강원감영이 유일하다. 강원감영의 정문 누각은 ‘포정루(布政樓)’다. 옷감을 펼치듯 부드럽게 정사를 돌보라는 왕의 당부가 새겨진 편액이다. 중간문에는 ‘징청문(澄淸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부정부패 없이 맑고 깨끗하게 지방 관리로서 임무를 다하라는 뜻이다.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의 글씨는 원주 출신인 최규하 전 대통령이 썼다.
감영 뒤편에는 강원도 관찰사가 풍류를 즐기던 연못과 정자가 있다. 관할 지역에 금강산이 있지만 가볼 수 없는 관찰사가 금강산처럼 꾸며놓고 즐기던 후원이다.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이 있는 연못을 조성해 태을선(太乙船·신선들이 타는 배)을 타고 풍류를 즐기던 그림을 참조해 복원해 놓았다. 연못 옆에는 수령 6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감원감영에서 멀지 않은 원주시 단구동에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문학공원이 있다. 1만1438㎡ 부지에 옛집과 정원, 집필실 등을 갖추고 소설 토지의 배경을 옮겨놓은 평사리 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 등 3개의 테마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원주시내에서 남쪽으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판부면 서곡리 백운산 자락에서는 제3회 원주용수골가을꽃축제가 한창이다. 봄에 꽃양귀비를 피웠던 4300㎡ 규모 축제장은 가을 정취에 어울리는 백일홍과 코스모스 등으로 채워졌다.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 명봉산 자락에 동화마을수목원도 둘러보자. 2020년 10월에 개장한 원주시 최초 공립 수목원이다. 146만㎡ 규모로 전시 온실과 전시원, 잔디광장, 약용식물원, 국화과 초본원, 옥상정원, 방문자센터 등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정원과 숲에는 나무, 꽃 등 1070여 종 13만여 식물이 심겨 있다.
동화마을수목원은 동화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숲속 곳곳에 아이들의 흥미를 끌 만한 전 세계 만화 캐릭터들이 꼭꼭 숨어 있고 포토존도 많아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 좋다. 원주시가 직접 관리하는 만큼 시설이 깔끔한 데다 입장료나 주차비가 없는 점도 장점이다.
여행메모
소금산 에스컬레이터 10분 소요…
용수골가을꽃축제 입장료 3천원
소금산 에스컬레이터 10분 소요…
용수골가을꽃축제 입장료 3천원
흥원창은 영동고속도로 여주나들목에서 나와 장호원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가다가 장안리 방면으로 다시 좌회전한 뒤 앙성·부론→원주·부론 쪽으로 달리면 닿는다. 강둑에 ‘흥원창’이라는 안내석이 있다.
1분당 30m를 이동하는 소금산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내려가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한다.
동화마을수목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용수골가을꽃축제장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입장료는 1인당 3000원이다. 초교생 이하 어린이와 서곡4리 주민, 텃밭 분양자, 장애인단체, 중증(1~3급) 장애인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원주는 한지의 본고장이다. 무실동에 한지테마파크가 있다. 부지 2만6279㎡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한지역사실과 체험실, 카페테리아, 기획전시실, 수장고, 회의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원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