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다툼·심경변화… 이륙전 “내려주세요” 5년여간 2500건↑

입력 2024-10-02 02:12

승객이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이륙 직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5년 8개월간 2500건이 넘게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전국 공항에서 발생한 ‘하기(下機)’ 사례는 총 2965건으로 집계됐다.

사례별로 보면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이륙 직전 내려 달라고 요청하는 비중이 ‘자발적 하기’ 사례가 2548건으로 전체의 85.9%에 달했다. 기체 결함, 지연, 운항 취소 등 불가피한 사정에 의한 ‘비자발적 하기’는 417건에 불과했다.

자발적 하기는 2019년 401건에서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항공편 운항이 감소하자 252건으로 줄었다. 그러나 하늘길이 열린 이후 2021년 417건, 2022년 542건, 2023년 523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여객 수요가 코로나 이전 수준까지 회복된 올해는 8월까지 413건이 발생했다.

이유로는 건강상의 문제가 1339건, 전체 54.9%로 가장 많았다. 일정 변경(273건), 가족·지인의 사망(142건) 등 다소 합리적 사유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 심경변화로 내려달라고 한 경우도 389건으로 전체의 1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행자와의 다툼, 요금 불만 등의 사유인 것으로 전해졌다.

출발 전 승객이 갑자기 내리게 되면 조치하는 과정에 항공기 운항이 지연되는 등 다른 승객과 항공사가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항공 보안법에 따르면 승객이 이륙 전에 내리면 항공사는 공항 당국에 상황을 의무적으로 알려야 한다. 이후 공항테러보안대책협의회 판단에 따라 기내 전면 재검색 등 필요한 보안 조치를 해야 한다. 때에 따라 이륙이 1~2시간 이상 지체될 수도 있다.

지난 7월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이륙을 앞둔 김포행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 한 명이 갑자기 내리겠다고 요구하면서 출발이 1시간가량 지연되는 일이 발생했다. 2018년엔 승객이 연예인 보겠다고 표를 사서 비행기를 탔다가 봤으니 내리겠다고 우기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탑승객 360여 명 전원이 이륙 직전이던 비행기에서 보안 점검을 다시 받아야 했고, 출발이 1시간 가까이 지연됐다.

항공사들은 승객의 자발적 하기는 배려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다른 승객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가능하다면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항공사 관계자는 “매우 긴급한 경우가 아니고, 합당한 이유가 없는 하기는 자제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