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요환 목사의 새벽묵상] 호흡과 방향

입력 2024-10-02 03:08

2022년 클래식 음악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반 클라이번(Van Cliburn)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20) 피아니스트입니다. 많은 분이 너무나도 훌륭한 연주자라고 엄지를 세우면서 입을 모았습니다. 저도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거의 모든 연주를 유심히 관찰하며 들었습니다. 참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그의 연주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하는 듯합니다. 특히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승 무대에서 연주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압권이었습니다. 이 연주 영상은 지난 28일 기준으로 유튜브 조회 수 약 1573만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연주가 왜 특별하게 들리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던 중에 톤베이스(tonebase)라는 유튜브 채널을 이끄는 벤 라우드(Ben Laude)의 해설 영상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벤 라우드는 임윤찬의 재능에 대해 여러 가지를 언급하는데, 특히 펄스(pulse)와 트라젝토리(trajectory)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펄스’란 우리 몸의 맥박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호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트라젝토리’란 궤도 혹은 방향을 말합니다. 해설가는 그의 피아노 연주에는 호흡과 방향,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어서 훌륭하다고 극찬합니다. 좋은 음악이란 호흡이 좋아야 하고 동시에 방향 역시 분명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호흡과 방향에 대해 조금 더 살펴봅시다. 피아니스트는 자신만의 호흡을 유지하고 그 호흡 안에서 유연하게 연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협연하는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수입니다. 하지만 호흡이 좋다고 꼭 좋은 연주가 되는 건 아닙니다. 피아니스트는 곡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체를 보는 안목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마치 양궁 경기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좋은 호흡으로 자세를 가다듬었다고 해도, 화살의 방향이 10점이 아니라 1점이나 2점을 향한다면 좋은 양궁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연주는 좋은 호흡을 바탕으로, 좋은 방향을 제시하며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시편 119편에서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절)라고 노래합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다 보니 시인의 ‘발’과 ‘길’이 피아니스트의 ‘호흡’과 ‘방향’과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이 우리가 내딛는 가장 작은 단위라면 길은 무수히 많은 발의 집합입니다. 발의 걸음은 독특한 걸음걸이나 뜀박질의 호흡을 만들고, 길은 수많은 발걸음의 방향을 이끕니다. 시인은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발과 길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정작 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발걸음을 비추는 등이 되고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빛이 됩니다. 결국 시인의 호흡과 방향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말씀 때문에 발걸음과 길이 결정됩니다.

이 짤막한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에게 감히 여쭙니다. 요즘 호흡과 방향은 어떠십니까. ‘나’라는 인격체 내면의 호흡, 가족이나 교회 성도들이나 일터의 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호흡, 그리고 열심히 내딛고 있는 길의 방향은 어떻습니까.

주의 말씀이 우리의 호흡과 발걸음을 이끄는 등불이 되시고 주의 말씀이 인생의 방향과 길을 환히 비추는 빛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산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