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복원한 과거

입력 2024-10-02 00:32

기억에 없어 사라진 줄도 몰랐던 과거가 버젓이 눈앞에 등장했을 때 느낀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비디오테이프 전면에 붙은 변색된 종이 위에는 환갑잔치라고 쓰여 있었는데, 플레이어가 없어 디지털로 변환하고 USB에 담은 후에야 볼 수 있었다. 내 유년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외조부와 친인척 모습이 담긴 유일한 영상은 워낙 오래전 것이라 화질이 좋지 않았다. 두 눈에 아로새기고 싶어서였을까. 볼수록 가슴이 아려왔지만 열 번쯤은 되돌려 본 듯하다. 이따금 등장하는 나는 어른들의 잔치에 어울리지 못해 따분한 표정을 지었고 심통이 났는지 아빠를 향해 두 번이나 밉다고 말했다. 기억의 편린마저도 증발한, 완전히 잊혀진 과거를 마주하며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상실감을 맛봤다.

앙리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과거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내 삶의 모습, 즉 성격, 말투, 행동거지, 흉터, 주름 하나하나가 모두 내가 살아온 과거 전체의 응축물이며 흔적이고, 나는 과거 전체를 등에 업고서 이 과거가 미는 힘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과거의 총체로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점은 전적으로 수긍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동의하지 않는다. 가령 그 누구도 처음 걸음마를 떼었을 때 본 부모의 환희를 기억하지 못한다. 몇 번 고꾸라졌다가 넘어지지 않게 된 건지 경험적 감각도 남아 있지 않는다. 단지 유아기의 성장 과정을 엿보면서 비슷한 과거가 있었으리라 추론할 뿐이다. 우리는 과거의 결과로 현재 여기에 남았지만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다.

나는 어느 날의 일을 기록한 오래된 영상을 감상하며 이 경험에 덧대 과거를 복원했다.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욕구가 기록 매체를 발명했고 그 덕분에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았지만, 영영 사라진 기억은 또 얼마나 많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기억의 저장고에 소중한 날들을 자주 담아 두어야겠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