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접시 위 랍스터의 눈물

입력 2024-10-02 00:35

최근 한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살아 있는 랍스터의 몸통을 절단한 후 머리에 왕관을 씌워 손님상에 제공했는데, 랍스터가 잘린 채 발버둥치는 영상이 SNS에 올라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논란은 단순한 음식문화의 차이를 넘어 과연 우리는 살아 있는 동물을 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류는 동물이 인간과 달리 단순히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고 여겨 왔다. 전통 유학에서도 살아 있는 것 가운데 사람만이 귀하고 동물과 초목은 슬기와 깨달음, 예의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람은 동물보다 귀하고 식물은 동물보다 천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들은 이런 생각에 교정을 요청한다. 포유류와 조류는 인간과 매우 유사한 신경 구조가 있어 물리적 고통뿐 아니라 정서적 고통도 느낀다고 한다. 어류나 갑각류 같은 하등동물도 고통을 인지하고 회피하려는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최근 런던정경대 연구진은 문어, 오징어 등 두족류와 가재, 게 등 갑각류도 척추동물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는 결론을 내렸다. 랍스터의 경우 고통을 느끼는 신경 구조가 있으며 위협적인 상황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리하여 영국은 무척추동물도 ‘지각 있는 존재’로 인정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동물복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미 스위스는 2018년 세계 최초로 갑각류를 산 채 요리하는 행위를 금지했으며, 노르웨이와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는 산 채 요리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대 과학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도 이미 동식물의 생태를 인간과 똑같은 층위에서 바라보곤 했다. 담헌 홍대용은 오륜(五倫)과 오사(五事)가 인간의 예의라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먹이를 먹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고, 군락을 지어 가지를 뻗는 것은 초목의 예의라고 말한다. 사람의 처지에서 사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사물이 천하지만 하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사람과 사물은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연암 박지원은 동물의 성질도 사람과 같아 피곤하면 쉬고 싶고 답답하면 시원하게 뻗치고 싶어 하므로 고삐나 굴레를 풀어 자유롭게 내달리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연암은 평소 사사로이 도살한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개를 기르면 잡아먹는 관습 때문에 처음부터 개를 기르지 않았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 고통에 대해 윤리적 고려를 한 것이다. 이러한 선조들의 생각은 현대의 동물 복지 및 권리 논의와 맥을 같이한다.

살아 있는 동물을 먹는 행위는 오랜 세월 이어온 인류의 식습관이기에 손쉽게 비난하거나 전면적으로 부정할 건 아니다. 일부에서는 갑각류는 고통을 뇌까지 전달받지 않으며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에 대한 반사신경만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비윤리적 관행들을 개선해 왔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어느 시기에는 사람을 먹는 식인 문화가 존재했으며, 노예제나 인종 차별을 관행으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먹거리가 풍부해진 오늘날 식습관 문화에서 생명이 있는 존재를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요리하는 방식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미각의 즐거움을 위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할 건 없어 보인다. 어떤 음식을 선택하고 어떻게 먹느냐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증표가 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논쟁은 단순히 동물 보호 차원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윤리의식과 지구 생명체의 책임감을 성찰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박수밀(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