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참사 대비할 구체적 의무… 구청, 군중 분산 권한 없어”

입력 2024-10-01 00:18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3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1심 판결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위원장은 “재판 결과는 너무나 참담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의혹을 받아온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 결과가 엇갈렸다. 현장 경찰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유죄를 받았지만 지자체장인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용산구 관계자들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치안기관에는 대규모 참사를 예방할 구체적 의무가 부여돼 있지만 행정 기관에는 그만큼 명확한 의무가 없다는 판단으로 해석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는 30일 이태원 참사를 예견하고 또 대비해야 할 의무가 경찰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핼러윈데이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찾은 수많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용산경찰서는 안전사고로부터 피해자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한다는 목표를 갖고 사고 상황에 대비해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관계에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서장에 대해 “대형 참사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추락 등 안전사고라는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다”며 “핼러윈 축제 현장에서 인파 위험성 등 정보 수집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사고 당일 현장에 정보관을 배치하지 않는 등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마약류 범죄단속과 교통단속에만 치중해 경찰이 경비경력 전원을 다른 집회 시위 현장에 배치한 점도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직전에 압사 위험과 인원 통제를 요청하는 112신고가 지속해 접수됐는데도 경찰이 소홀히 대처한 점도 문제였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이 “차도로 밀려 내려온 인파를 인도로 밀어 올리라”는 무전 지령을 내린 것과 관련해 이 전 서장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점도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와 달리 용산구에 대해선 인파 유입 통제권한 등이 사실상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용산구청은 사전에 특정 장소로의 대규모 인파 유입을 통제하고 밀집한 군중을 분산할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참사의 직접 원인은 ‘다수인파의 유입과 그로 인한 군중 밀집’인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실효적 대책을 수립하거나 행사할 권한이 구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용산구 측이 경찰 등과 협조체계를 충분히 구축하지 않았다는 검찰 측 주장도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책임기관의 장은 유관기관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지만 관련 법령상 의무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태원 참사를 앞두고 용산구가 안전관리계획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다중운집으로 인한 안전사고 대책을 보완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난안전법령상 구체적인 업무상 주의의무가 용산구에 부여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당시 안전법령엔 다중군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 유형으로 분리돼 있지 않았고,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2022년 수립 지침에도 그런 내용이 없었다”며 “재난안전법령에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해선 별도 안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어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