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열 초점] ‘게임질병 코드’에 대한 안일한 생각

입력 2024-10-02 04:14

지난달 12일 게임 질병코드로 불리는 게임 이용 장애의 국내 도입 여부를 놓고 게임 산업계와 의료계가 처음으로 모여 토론을 벌이는 역사적인 자리가 있었다. 게임 이용 장애 국내 도입 여부를 따져보기 위한 민관협의체를 꾸린 지 5년 2개월 만의 일로,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청회를 성사시켰다. 패널은 양측 동수로 배정했지만 의원회관을 찾아온 청중은 대부분이 게임 이용 장애 도입을 반대하는 미디어와 게이머였다. 그럼에도 도입을 찬성하는 두 의사의 발언은 강했다. 반대 측은 별달리 반박 논리를 찾지 못했다.

찬성측 패널로는 이슈 파이팅을 주도해온 이해국 가톨릭대 교수, 이상규 한림대 교수가 나섰다. “왜 게임만 가지고 그러냐고 하면 억울할 수도” “오늘 이후로 수준 낮은 이야기 안 했으면” “낙인화로 아이들이 게임 중독 치료를 못 받아” 등 투박한 표현을 스스럼없이 했지만 이를 제지할 반격기가 게임계엔 없어 보였다.

공청회에서 확인한 정신의학계의 전략은 명확하다. 먼저 게임의 긍정적 사례(선용군)가 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게임 산업이 콘텐츠 산업의 한 축으로서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언급한다. 그럼에도 게임 과몰입은 엄연한 현상이고 적잖은 과몰입 중독자를 관리하기 위해 질병코드 도입이 필요하단 논리다. “여러분 주변에도 게임을 과하게 하는 아이가 많지 않느냐”며 게임 중독 증상을 보이는 이들 수천명을 치료했다고 의사가 말하니 당장 이를 꺾을 만한 논리가 나오지 않은게 냉엄한 현장 분위기였다.
지난달 12일 열린 게임이용장애 공청회에서 이해국 가톨릭대 교수(왼쪽)와 이상규 한림대 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질병 등재에 한국 정신의학계의 입김이 작용했다 한들 아무런 검증 없이 결정 했을 리는 없다. 이들이 수십년간 쌓아온 이론과 증거는 생각보다 더 견고하다. 이를 전제로 대응하지 않으면 게임 산업계는 지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민관협의체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조직은 의료계가 완벽히 주도권을 쥐고 있다.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할 당시 사실상 국내 도입의 결론이 났다는 평가도 있다. 한 민관협의체 참여자는 “이대로 현상이 유지된다면 게임 이용 장애는 99% 국내에 들어온다고 봐야 한다”면서 “행정 원리가 그렇다. 정부가 국제기구에서 결정한 걸 부정하는 건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질병코드 도입을 인정하고 규제가 산업계에 확산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게 현실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껏 통계청은 WHO의 국제질병분류(ICD)의 일부를 제외하고 도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도입 저지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WHO 결정에 대한 분쟁화다. WHO는 1년 이상 게임 관련 장애 행동이 지속하면 게임 이용 장애로 본다고 정의했다. 이를 뒤집을 만한 보건의학적 근거를 정립한 뒤 WHO에서 매년 10월 여는 ‘WHO-FIC’에 게임 이용 장애 삭제를 설파해야 한다. 국내에선 통계청이 이 회의에 참여한다.

난관이 많다. 먼저 민관협의체에서 하나의 결론을 내야 하는데 의료계 반발이 크다. 또한 현 정부가 WHO에 반대 의견을 적극 개진할지도 미지수다. 정부 출신 고위 관계자는 “국제기구의 결정이 짧은 시간 내에 번복된 사례는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선 없다. 번복은 실책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전향적이고 전폭적인 길을 찾지 않으면 (게임 이용 장애 국내 도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