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청소년 정신건강 악화 원인
스마트폰·SNS 이용 증가 지목
사용 시간·연령 제한 추세 확산
일률적 규제 반대하는 의견도
우리 아이들의 상황은 어떨까
실태 확인이 가장 시급한 일
스마트폰·SNS 이용 증가 지목
사용 시간·연령 제한 추세 확산
일률적 규제 반대하는 의견도
우리 아이들의 상황은 어떨까
실태 확인이 가장 시급한 일
최근 일주일 새 몇몇 칼럼에서 책 한 권이 언급됐는데 마침 읽고 있던 책이었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다. 국내에선 지난 7월 29일 초판 1쇄가 발행됐는데 한 달여 만인 9월 4일 초판 6쇄를 찍었다. 그의 문제의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틱톡 등 빅테크 플랫폼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산업적 측면에서 독점과 저작권 침해, 개인정보 오남용도 우려됐지만 무엇보다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에 끼칠 영향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하루종일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과 SNS 탐닉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는 대부분이 공감했지만 그것들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목할 근거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스마트폰과 SNS 사용을 놓고 매일 격전이 벌어졌다. 엄마는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빠는 너무 급격하게 통제하면 아이들의 반항이 엉뚱하게 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식이다. 하이트의 책은 부모와 기성세대들이 걱정했던 그 지점을 통계로 보여준다. 2012년쯤부터 미국 10대의 우울증 발생 빈도가 2010년 이전에 비해 약 2.5배 폭증했고,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14세 여자 청소년 자해 비율이 이전 10년에 비해 약 3배, 자살률은 167% 증가했는데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급격하게 진행된 스마트폰 대중화 및 SNS 이용시간 증가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한다.
불안세대는 1996년 이후에 태어나 가상 세계에서 사춘기를 보낸 첫 세대인 Z세대를 가리킨다. ‘놀이 중심’ 아동기가 ‘스마트폰 중심’ 아동기로 바뀌면서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이 세대 청소년들의 정신질환이 급증했다고 하이트는 주장한다. 현실에서는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부모와 기성세대가 온라인에서는 아이들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했으며 그 결과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인터넷에 연결된 세대에게 디지털 도파민을 하루 24시간씩 일주일 내내 공급하는 현대판 피하 주사기”라는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교수 애나 렘키의 섬뜩한 설명이 보여주듯 스마트폰과 SNS는 아이들에게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보름여 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플랫폼 회사들이 이용자들을 플랫폼에 더 의존하고 중독되게 해서 그걸로 돈벌이를 했다고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집한 사용자 정보를 그들이 서비스를 끊지 못하고 계속 이용하게 하는 데 활용해왔다는 것이다.
거대 플랫폼의 더 큰 해악은 아동과 청소년을 피해자에 머물게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10대들이 딥페이크 성범죄나 사이버 폭력의 가해자가 되고 있고, 일부는 마약 유통망 등에도 가담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집약돼 있고, 전염력 강한 SNS가 온상으로 지목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중독성과 위험성을 억제하기 위해 많은 나라에서 10대의 스마트폰과 SNS 사용을 규제하는 입법에 나서고 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률적인 규제가 인권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주장을 설득하려면 스마트폰 및 SNS 이용이 우리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혀야 한다. 나아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2022년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실태조사’ 결과는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전국 단위 실태조사였다. 정신장애 유병률과 그 유형,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비율, 자살 관련 행동 비율 등을 보여줬지만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올려놓은 설문지에는 SNS를 포함한 매체 이용시간, 스마트폰 중독과 관련된 질문 문항도 있었으나 결과 발표에서 관련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향후 이뤄질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는 스마트폰 및 SNS 사용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설문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살펴야 한다. 아울러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실태조사 외에도 정부와 학계가 별도의 심층적 연구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서둘러 실체를 밝혀야 한다. 부모와 사회의 무관심이 자녀를 범죄 피해자·피의자로 만든다는 데 사실 여부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승훈 논설위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