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새해 명절이 시작된다.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리는 이 새해 축제 기간에 유대인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은 역사를 기념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여섯째 날을 기념한다. 올해는 이 역사를 5785번째 기념하는 새해를 맞는다.
5785년이란 그레고리력 2024년에 구약 시대의 3761년을 더한 것이다. 3761년은 창조주에 의해 시작한 인류 역사 가운데 구약성경이 선택해 기록한 시간의 합이다. 이 3761년의 세월을 인류 역사가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의 새해는 인간의 역사,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새해를 기념하는 축제 기간에 읽는 성경 본문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사라와 라헬, 한나와 하갈 네 명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접한다. 첫째로 접하는 어머니인 사라는 이스라엘 선조인 아브라함의 아내로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 라헬은 이삭의 며느리로 남편 야곱이 사랑한 아내다. 라헬은 요셉을 낳고 베냐민을 낳으며 숨을 거뒀다.
사사 시대의 한나는 오랜 세월 불임으로 고통받다가 서원 기도 끝에 사무엘을 낳았다. 이들은 모두 큰 고통 가운데 자식을 출산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어머니다. 이 세 어머니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전혀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다. 특히 사라가 이삭을 낳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란 민족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갈은 이들과 다르다. 사라 라헬 한나가 이스라엘의 어머니라면 하갈은 이스마엘의 어머니다. 사라가 아직 자식을 낳지 못하던 시절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인 이집트 여인 하갈을 첩으로 들였다. 이렇게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이다. 하지만 후일 아들을 낳은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강요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다.
이렇게 이스마엘은 이스라엘과는 별개 민족의 조상이 된다. 다시 말해 하갈은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의 조상을 낳은 여인이다. 훗날 이슬람교도는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가리켜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런 하갈에 대한 대목을 왜 굳이 새해 첫날에 읽도록 유대 전통은 정하고 있는 것일까. 유대인은 이를 지난 긴 세월 동안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헤즈볼라 간의 전쟁이 한창인 지금은 특히 그럴 것이다.
이런 우리의 의문점에 대해 한 세기 전 랍비 아미엘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답을 제시했다. 새해에 유대인이 하갈에 대해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에게 어린 아들 이스마엘의 소리를 듣도록(창 21:17) 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주인 사라에게서 쫓겨나 광야를 방황하다 목말라 죽게 된 아들 이스마엘을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 울고 있던 하갈을 살피셨다. 샘물을 주어 마시게 했고 “하나님이 그 아이(이스마엘)와 함께” 계셔 주심으로(창 21:20) 장성해 큰 민족을 이루도록 했다.
즉 하갈은 하나님이 한 어머니의 기도를 외면치 않는 분임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다. 비록 그가 이스라엘과 다른 이스마엘의 어머니지만 말이다. 이런 어머니들이 있기에 인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걸 이스라엘이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새해 축제가 웬말이냐’ 싶은 전시 상황에서도 성경은 뜻하지 않게 어머니의 부르짖음을 직시하게 한다. 누구도 어머니에게 귀하지 않은 자식이 없고, 어느 생명도 하나님의 긍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뜻을 기억하는 새해는 비단 이스라엘만의 새해가 아닌 전 인류의 새해다. 그 축제를 우리는 마음껏 끌어안는다.
박성현(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