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이란 ‘꺾이거나 굽은 데가 없는 곧은 선’을 말합니다. 이 직선 위에 사람들이 서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적으로 크고 작음이라는 비교가 발생하게 되고, 비교는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나바를 직선 위에 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실패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바나바는 바울과 결별하고 마가를 데리고 1차 전도여행지였던 구브로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와 함께 바나바는 사도행전에서 완전히 퇴장하고 맙니다. 이후 사도행전의 무대는 바울의 독무대 같고, 바나바는 바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 같아 보입니다. 바나바를 직선 위에 올려놓고 보기 때문입니다. 직선은 누군가를 성공한 사람으로 세우지만 대부분의 사람을 실패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를 성공한 목사라고 말하고 여전히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를 실패한 목사라고 말합니다. 직선 위에 서서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직선이 아닌, 원 위에 서 있었습니다. 자신은 바울처럼 대중설교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1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리더가 돼 주도적으로 선교지를 누빌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하고 밀어주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이 갈등의 소지가 많았음에도 아무 일도 없이 은혜스럽게 여정을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바나바가 직선이 아닌 원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 위에 서 있으면 아무리 옆에 뛰어난 사람이 서 있다 할지라도 비교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낮과 밤이 비교대상이 아니고 공존의 대상인 것처럼, 원 위에 선 순간 어떤 것도 나와 비교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바뀝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직선이 아니라 원 위에 서서 하나님이 날 부르신 부르심의 방향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100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 100명 모두는 각자의 부르심이 다릅니다. 서로 비교할 수 없는 100개의 삶이 부여된 것이기에 비교하거나 쫓겨 다니지 않고 부르심의 방향을 따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갈렙이 직선 위에 서서 살아갔다면 그는 45년 동안 여호수아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됐을 것입니다. 갈렙도 여호수아와 함께 믿음의 말을 했지만 정작 여호수아만 인정을 받고 모세의 후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갈렙은 직선 위에 서서 여호수아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원 위에 서서 자신을 향한 부르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헤브론 산지에 있는 아낙자손을 점령하면서 믿음의 진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그때부터 요한은 예수님의 생모인 마리아를 봉양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부르심은 마리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를 봉양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끼니를 챙겨드리고 빨래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요한은 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이 부르심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말년에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요한1·2·3서와 요한계시록을 남기게 됩니다. 나의 부르심이 평생 한 사람을 위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설거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박경철 목사(더세우는교회)
◇더세우는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에 속한 교회로 2021년 11월에 개척했습니다. 예배자를 세우고 다음세대를 세우는 비전에 따라 주님의 사람들을 세우는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박경철 목사는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MDiv),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ThM), 미국 트리니티 신학교(DMin)에서 공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