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피플 회장에 취임했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가 1999년 설립한 굿피플은 지구촌의 소외된 이웃을 돕는 단체로 아동 보호, 청소년 교육, 긴급 구호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곳이다. 나는 회장 취임 이전부터 이 단체의 수석부회장을 맡았던 터라 굿피플을 이끌게 된 것에 어색함을 느끼진 않았었다.
회장에 취임한 뒤 굿피플 이름이 새겨진 조끼를 입고 지구촌 곳곳을 누볐다. 세계의 소외된 이웃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더 커지게 됐다. 기억에 남는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다. 가령 쓰나미로 쑥대밭이 된 필리핀 지역을 방문했는데 시체 썩는 냄새가 곳곳에서 진동해 깜짝 놀랐다. 나는 굿피플 임원들과 주민들에게 쌀과 각종 생활용품을 전달했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을 찾아 이 지역 사람들을 상대로 백내장 치료를 후원하는 사역에 동참한 적도 있다. 정말 열악한 곳이었다. 영양실조 탓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수두룩했다. 수술 도구도 부족했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빛’을 선물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많은 이가 굿피플의 도움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백내장 탓에 양쪽 눈이 모두 보이지 않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많은 탓에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한쪽 눈만 치료해줬는데 조손가정에서 살아가는 그 아이의 사정이 너무 딱해 양쪽 눈을 다 치료해주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을 했을 때 그 아이를 키우던 할머니가 기뻐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 손자가 이제 앞을 볼 수 있게 됐네요.”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 거 같아요.”
“왜요?”
“손자 학교 보내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1년간 굿피플 회장으로 일했던 시기는 나눔의 뜻을 실천할 때 생기는 보람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실감한 시간이었다. 필리핀에 학교를 세운 적도 있다. 그때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100여년 전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들어와 세운 학교와 병원들이 그렇듯 우리가 세운 시설이 필리핀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이곳의 많은 이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해 달라고.
이와 동시에 국내에서는 홈리스(노숙인) 사역을 전개했다. 주거 지원 사업을 벌이면서 홈리스들을 많이 만났다. 짐작과 달리 그들 중엔 한때 세상에서 잘나가던 사람이 수두룩했다. 의사도 있었고 박사도 있었다. 그들은 어느 순간 큰 좌절을 경험하고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누군가를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내놓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들은 전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결국 나눔과 봉사를 통해 나는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