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한국, 담배 유해 경고 강화·가향 제품 판매 금지 필요”

입력 2024-10-01 04:17 수정 2024-10-01 04:17
브라질, 5년 전 액상담배 등 판매 금지
“한국도 더 강한 규제 정책 시행 가능”
캐나다 담뱃갑 ‘경고’ 사진이 75%
“멘톨 사용 금지 효과, EU서도 나타나”

브라질 식품의약품감시국 안드레 루이스 올리베이라 다 실바(왼쪽) 박사와 캐나다 워털루대 제프리 퐁 교수가 최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KBIZ홀에서 열린 2024금연정책 포럼 참석에 앞서 국내·외 담배규제 정책과 관련해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윤웅 기자

브라질과 캐나다는 강력한 담배규제 정책을 펼치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브라질은 2012년 세계 처음으로 담배에 가향 첨가물을 금지했다. 담배에 달콤한 과일·초콜릿향 등을 더한 가향 담배는 청소년과 젊은 여성의 ‘흡연 입문(Gateway)’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는다. 캐나다는 2001년 세계 최초로 담배에 경고그림을 표시했고 나아가 담뱃갑 ‘플레인 패키징(Plain packaging·무광고 포장)’을 시행 중이다.

두 나라의 담배규제 전문가 2명이 최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건강증진개발원이 주최한 2024 금연정책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브라질 식품의약품감시국(ANVISA) 안드레 루이스 올리베이라 다 실바 박사와 캐나다 워털루대 공중보건학과 제프리 퐁 교수를 만나 ‘담배 없는 미래세대’를 위한 국내외 담배규제의 방향성과 한국의 금연정책에 대한 제언을 들어봤다.

브라질, 오랜 담배규제 정책…흡연율 뚝

실바 박사는 “브라질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흡연율이 35~40%에 달했으나 지금은 10% 안팎으로 떨어졌다”며 “담배업계 반발이 여전하지만 가향 첨가물 금지 등 다양한 담배규제 정책을 오래전부터 펼쳐온 덕분”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은 1996년 금연구역 도입, 1999년 담배 유해성분 공개, 2001년 세계 두 번째로 담배 경고그림 도입, 2009년 액상(EC) 및 궐련형 전자담배(HTP)를 금지했다. 판매를 허가해달라는 담배업계의 끈질긴 요청에 재검토했지만 올해 EC와 HTP의 계속 금지를 결정했다. 실바 박사는 “한국 역시 모든 기관이 긴밀하게 움직이는 좋은 구조를 가진 만큼 더 강력한 담배규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바 박사는 특히 가향담배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학적 증거와 담배업계 내부 문서는 가향 첨가물 사용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흡연으로 유인할 목적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단언했다. 이어 “멘톨 담배 흡연자의 경우 담배를 더 피우고 금연에 어려움을 겪으며 멘톨의 마취 기능으로 인해 흡연자가 더 깊이 흡입하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이런 흡연자는 멘톨 없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 더 병에 걸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브라질은 멘톨을 비롯한 가향제를 식품첨가물로 지정, 담배에 사용을 못 하게 했다.

다른 국가들은 ‘특정 향(characterizing flavor)’에 대해서만 규제하지만 브라질은 담배의 특성을 바꾸는 미량의 가향 첨가물까지 모두 금지한다. 실바 박사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브라질은 향(냄새)을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을 금지하기 때문에 훨씬 더 확실한 규제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바 박사는 세계보건기구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 9·10조(담배 성분 및 배출물 규제) 이행도 강조했다. 한국은 내년 11월 담배회사가 담배제품의 유해성분 정보를 정부에 제출하고 그 결과를 공개토록 한 ‘담배유해성 관리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실바 박사는 “담배제품의 독성 성분뿐만 아니라 첨가제, 필터, 사용된 종이, 색소를 포함한 성분도 공개돼야 한다. 한국 정부는 담배제품에 대한 가능한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담배회사가 자사 제품이 유해하지 않다는 걸 입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캐나다 경고그림, 세계에서 가장 강력

제프리 퐁 교수 역시 캐나다의 흡연율 감소에 다양하고 강한 담배규제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캐나다의 현재 흡연율은 12%까지 줄었다. 캐나다 연방 정부는 2035년까지 흡연율을 5%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2023~25년 개정된 담뱃갑 경고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모델로 인정받는다. 퐁 교수가 보여 준 현지 판매 담배의 겉 포장에는 구강암 등 각종 암의 병변 사진이 전체 면적의 75%를 차지했다. 퐁 교수는 “그림이나 삽화가 아니라 실제 폐암으로 죽어가는 캐나다인의 사진도 있다”고 했다. 또 포장지 어디에도 담배의 브랜드 표시가 없는 플레인 패키징을 보여줬다. 포장지 옆면에는 흡연의 독성에 대한 문구가 포함돼 있고 담뱃갑을 열어서 밀면 흡연의 악영향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는 속지가 나오는 식이다.

아울러 담배 개비마다 ‘담배 연기는 아이들에게 해롭다’ ‘한 모금마다 독이 들어 있다’와 같은 문구가 적힌 것도 특이한 점이다. 캐나다는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개비 단위 경고 문구를 도입했다. 퐁 교수는 “담배 유해성에 대해 도배하다시피 했다. 청소년과 비흡연자들이 담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2002년부터 세계 31개국의 담배규제 정책 평가 국제프로젝트(ITC)를 수행해 온 퐁 교수는 한국이 강화해야 할 담배규제책으로 “ITC 경험상 경고그림의 효과가 좋았다. 플레인 패키징 도입은 우선 스타트가 중요하고 금연구역법은 예외 없이 포괄적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멘톨 같은 가향 첨가물 금지도 중요한데, 캐나다는 멘톨을 금지하면서 금연율이 상승했다. 또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연합도 효과를 봤고 미국은 뉴욕과 캘리포니아주에서만 금지했는데도 영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