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에 대한 분란이 점입가경이다. 처음 사모펀드 MBK가 공개매수 형태로 적대적 인수 선언을 할 때만 해도 2조원대라고 이야기하던 사안이 이제는 5조원 규모의 ‘머니 게임’으로 커졌다. MBK는 1주당 매수 가격을 75만원으로 인상하며 공세의 강도를 높이고, 고려아연 측은 자사주 매입 방안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번 사안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일이다. 사모펀드가 기존처럼 부실기업 혹은 파산기업이 아니라 정상적인 경영을 이어가는 기업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분쟁이 한국 경제에서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첫째, 고려아연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는 위험이 발생한다. 단기 자본이자 외국인 자본을 운용하는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하게 되면 고려아연의 장기적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MBK 이름 앞에는 항상 사모펀드라는 말이 붙는다. 사모펀드의 본질은 대부분 3년 혹은 5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투자 수익을 추구하는 단기 자본이다. MBK처럼 규모가 큰 사모펀드의 경우 대부분 투자 자산의 상당 부분을 외국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에서 MBK가 중국 자본이라는 논란도 있지만, 현재 MBK가 운용하는 자본의 대다수는 중국을 포함한 외국 자본이다. 한국 경제의 관점에서 단기 자본이자 외국 자본에 지난 30년간 세계 최고 기술력을 창출해 온 고려아연 같은 국가 기간산업의 경영권을 주는 것이 좋은 일인가.
둘째, 사모펀드가 부실 기업 혹은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기업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경영을 이어가는 기업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는 경쟁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마치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사모펀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대규모 금융기관들에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데, 사모펀드가 자금을 조달할 때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런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공격하면 경영권을 방어하는 기업들은 이자비용을 지급하는 자금을 차입해 방어해야 하는 불공정 경쟁 상황이 벌어진다. 이것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간 영역을 구분해서 경쟁을 분리하는 것과 유사한 경우다.
셋째,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2700여개의 상장기업 중에서 대주주들이 경영권을 확고하게 방어할 수 있는 기업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조차 사모펀드의 자금력을 기반으로 경영권을 공격받으면 지켜내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국민연금의 자본을 위탁하는 많은 사모펀드들이 제2 혹은 제3의 MBK와 같은 일을 펼치면 과연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갈까.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아연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려는 주체들은 과연 고려아연의 현재 경영진보다 월등한 경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지난 30년간 고려아연과 영풍이 해당 업계에서 가지고 있는 경영 능력은 업계 관계자 대다수에게 알려져 있다. 우선 양사가 가지고 있는 수익성과 생산성은 물론이고 해당 기업 직원들의 연봉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영풍과 손잡은 MBK는 과연 제련산업에 대한 전문성 관점에서 고려아연의 현재 경영진을 능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MBK와 영풍이 50만원정도였던 기존 주가보다 무려 50% 이상의 프리미엄을 지급하고 고려아연 경영권을 인수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단기 자본을 운용하는 MBK는 과연 어떻게 투자수익을 창출할 것인가. MBK와 영풍 간의 이면 계약이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
고려아연은 제철산업의 포스코처럼 제련산업에서 아주 중요한 국가의 중추다. 미국은 신일본제철이 부도 직전에 처해 있는 유에스스틸을 인수하려던 노력도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차단했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