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재 10월 마비설’ 결국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린 국회

입력 2024-09-30 00:30

한여름부터 나돌던 ‘헌법재판소 10월 마비설’이 결국 현실화하고 있다. 이종석 헌재 소장과 김기영 이영진 재판관의 퇴임(10월 17일)이 3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가 후임자 선출 절차를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퇴임하는 세 명은 모두 국회 선출 몫인데(나머지 여섯 명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세 명씩 지명), 후임 추천권을 놓고 여야가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오랜 관행은 여당과 야당이 한 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은 여야 합의로 정하는 것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내세워 “두 명 추천권”을 요구하면서 논의가 벽에 부닥쳤다.

청문회 일정을 감안할 때 늦어도 지난주에는 추천이 이뤄졌어야 세 재판관 퇴임 전에 후임을 임명할 수 있었다. 이제 17일 이후 헌재 ‘6인 체제’는 기정사실이 됐다. 헌법재판은 재판관이 일곱 명 이상 출석해야 심리가 이뤄지는 터라 이는 헌재 기능의 마비를 뜻한다. 헌재는 헌법소원,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등 월평균 230여건을 처리하며, 현재 약 1200건이 계류돼 있다. 지난 6월 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결정을 비롯해 국민의 삶과 사회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사안이 많다. 이런 사법기관을 국회가, 더 정확히는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가 멈춰 세우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법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을 임명토록 했을 뿐 여야 추천권 배분 같은 선출 규정은 따로 두지 않았다. 재판관 구성의 다양성을 살리자는 취지이기에 그 정도는 국회가 알아서 하도록 정치의 영역에 남겨둔 거였고, 그간의 정치는 ‘1(여) 대 1(야) 대 1(여야 합의 또는 제3의 원내교섭단체)’의 암묵적인 룰을 만들어 비교적 원만히 운영해 왔다. 이후 진영 정치가 심화해 헌법재판관의 보수-진보 성향을 다투면서 추천권 갈등이 잦아졌는데, 이번 싸움은 그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그래서 사태가 길어질 수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등 탄핵소추안을 여럿 통과시켰거나 추진 중인 민주당이 헌재 심리 중단을 통해 당사자의 업무 정지를 장기화하고 탄핵 정치 효과를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또 공공연히 주장하는 대통령 탄핵의 정지작업 차원에서 오랜 규칙을 깨뜨리면서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 수를 늘리려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음모론처럼 들리던 이야기가 헌재 마비 사태의 현실화와 함께 자칫 정치적 이슈로 떠오를 판이다. 아무리 정치가 망가졌다 해도 국가의 3대 축인 사법부를 멈춰 세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 배경을 둘러싼 의혹은 정치의 막장을 보여주듯 기괴하다. 여야는 정쟁으로 초래한 헌재 마비 위기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사법 서비스를 정치가 망친다는 오명, 정략적으로 그리한다는 의구심을 벗으려면 재판관 선출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