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이 중국·일본·유럽과 비교해 침술과 한약을 다양하게 각 전문 진료 분야에서 활용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패트릭 소트뢰일 국제침술협의회장)
“프랑스는 침 역사가 긴 편이어서 의과대학에서도 가르치고 있고 병원서도 많이 사용되지만, 한의학에서만큼 지원되지는 못하고 있다.”(헨리 이브스 국제침술협의회 차기 학술 위원장)
지난 27~29일 전 세계 40개국 1000여명의 의사들이 한국 침술을 배우러 제주도에 모였다. 국제침술협의회(ICMART) 학술대회에 참가한 해외 의사들은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한국의 침술과 한의학에 큰 관심과 부러움을 표시했다.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창립된 ICMART는 전 세계 3만5000여명의 의료인이 활동하는 통합의학 분야의 선도 단체다. 현대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이 주도해 침술 등 전통의학을 진료에 접목하는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40년 넘게 유럽, 미국 등 서구권에서만 학술대회를 열던 관행을 깨고 이번에 아시아 최초로 한국을 개최지로 선택했다.
대한한의학회 최도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회장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의사 중심의 침술 학술대회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한국은 한의사와 의사 제도가 양분돼 있다 보니 한의사들이 ICMART에 가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동안 매년 대회에 참가하면서 한의학이 전통의학으로서 침술뿐 아니라 치료술이 우수하다는 게 입증됐고 2019년 협회에 가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은 3년 전 이번 학술대회 개최국으로 선정됐다. 최 회장은 “그동안은 유럽 의사들이 중국에 가서 침술을 배우곤 했는데,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한의학연구원이나 부산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중심이 돼 해외의 전통의학 연구자들을 많이 섭외해 교육도 하고 한의학의 세계화를 이뤄왔다”며 “(학술대회 개최는) 그런 노력이 바탕이 됐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해외 의사들은 각국의 침 치료 동향을 소개했다. 마이크 커밍스 영국침술학회 이사는 “유럽에서 침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는 통증이고 영국에선 2위가 우울증이다. 효과 연구도 많이 진행됐다”면서 “다만 유럽 정부들이 이런 연구 데이터를 정책을 만드는 데 많이 활용하지 않고 있어 아쉽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카린 스토커트 ICMART 임원은 “최근 유럽과 미국의 암 가이드라인에 침을 유방암 치료에 권유하는 것으로 추가됐다. 유방암 환자들의 항암 중 발생하는 통증 관리에 침 치료를 권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항암을 오래 받을 수 있다면 유의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에선 출산 시 통증 완화, 생리 불순, 소아·청소년 질환 등에 침술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스토커트 임원은 “ICMART의 목적은 더 많은 환자가 침 치료를 인지하고 국가 시스템에 도입 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몇몇 유럽 국가에선 제한적으로 특정 질환의 침 치료에 보험을 적용해 주고 있다.
‘통합의학 헬스케어의 미래-침술, 의과학 및 기술의 융합’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는 침술 연구로 유명한 해외 석학들이 대거 참석해 강연했다. 중국 웨스트레이크대 생명과학부 취푸 마 교수는 하버드의대 재직 시부터 네이처와 뉴런 등 저명 학술지에 밝힌 ‘전침 치료의 전신 염증 조절 기전’을 소개했다. 전침은 침을 꽂은 후 침 자루에 미세한 전류를 흘려 자극을 배가하는 치료법이다. 마 교수는 “전침은 특정 신경 경로를 통해 염증을 조절할 수 있다. 저강도 전침은 염증 반응을 조절하며 고강도 전침은 염증이 있는 부위에 더 효과적”이라며 “이런 발견은 현대의학과 전통의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침술학회 이사인 마이크 커밍스 박사는 현대의료에서 침술의 미래를 조망했다. 그는 “서양에서는 근거에 기반을 둔 적절한 제공을 원하지만 동양에서는 전통적인 의료 관행의 일부로서 침술이 더 널리 사용된다”면서 “이런 기계적 분석에서 벗어난 치료 접근법이 중요하고 전통과 현대과학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과학적침술협회장인 콘스탄티나 테오도로투 박사는 ‘흡연 등 중독 질환에서의 침술 적용 연구’를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최도영 한의학회장은 “현대의학만으로는 다양한 질환 치료에 한계가 있다. 정신·심리적 몸 치료는 한의학이 잘하는 측면이 있다. 통합의학이 미래의학의 패러다임이며 여기에서 한의학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학술대회에선 초음파 유도 약침 치료, 매선 요법 등 다양한 침술과 파리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를 치료한 스포츠 한의학, 추나요법 등 다양한 한의 치료가 라이브로 시연돼 해외 의사들의 이목을 붙잡았다. 우루과이 의사 토마스 다비드 박사는 “현대 과학기술과 결합한 한국의 침술과 의료술에 감탄했다. 이번에 접한 한의학은 전통의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통합의학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제주=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