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美앨빈호 ‘열수분출공’ 발견
350도 고온서도 생명 존재함 보여줘
암흑 산소, 산소 식물기원 이론 위협
학계서 최종 사실 인정받을지 관심
350도 고온서도 생명 존재함 보여줘
암흑 산소, 산소 식물기원 이론 위협
학계서 최종 사실 인정받을지 관심
지구의 산소는 식물 광합성이 가능한 육지와 바다 표면에서 만들어진다. 이 단순한 설명은 지난 7월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 결과로 바뀌게 됐다. 스코틀랜드 해양과학협회 앤드루 스위트먼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이 동태평양 수심 약 4000m 바닥에서 산소가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생성되는 산소라는 뜻으로 ‘암흑 산소(dark oxygen)’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발견이 사실이라면 지구 산소 공급원의 일반적 요소가 식물과 햇빛이라는 기존 지식의 틀을 무너뜨린 기념비적인 사건이 된다.
암흑 산소는 심해저 평원에 널려 있는 금속 덩어리들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 설명된다. ‘망간단괴’ 또는 ‘다중 금속 결절’로 알려진 감자 크기 덩어리 하나에서 약 1V의 전기가 방출되며, 이 덩어리들이 바닷물을 전기분해해 산소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망간단괴에는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금속 원료가 들어 있어 ‘바위 속 배터리’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덩어리 자체가 배터리인 셈이다. 해양학 지식 확장을 가져온 이 발견은 ‘아는 만큼 보이는 곳’보다는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곳’이 심해임을 증명한 또 하나의 사례다.
심해의 과학적 조사의 시작은 약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절대적인 해양제국이었던 영국은 1872~1876년 전 대양을 아우른 챌린저호(HMS Challenger) 탐험을 수행했다. 덜 알려졌지만 독일도 1874~1876년 가젤호(SMS Gazelle) 탐험을 수행했다. 훗날 해양학 기초를 다진 대양 조사의 출발로 여기게 되는 이들 탐험에 수심 측정과 해저 지형 조사가 주요 목표 중 하나로 포함됐다. 이는 1866년 완성된 영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대서양 횡단 해저 전신케이블 설치에 기인한다. 당시 기술로서는 엄청난 도전으로 성공 이후 해양 수심 자료는 상업적 가치가 매우 높은 정보가 돼 있었다. 해저 케이블을 부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해저 본질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탐사 비용 마련이 쉬웠던 배경이다.
해저 지형을 조사하던 챌린저호는 괌 남서쪽에서 추와 밧줄을 이용해 수심 4475패덤(8184m)을 측정했다. 오늘날 마리아나 해구로 알려진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역을 발견한 것이다. 영국은 다시 1951년 이 부근에서 음파와 와이어를 이용해 최대 수심 1만863m를 측정하고 챌린저 해연(Challenger Deep)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챌린저호 탐험의 다른 해저지질 분야 성과는 망간단괴의 발견이다. 수백만년에 걸쳐 형성된 검은 암석 덩어리들은 인간에게 노출돼 150년이 지난 지금 미래의 광물자원으로 주목받고 있고, 품고 있던 자연의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
심해에서 새로운 현상 발견은 해양학자들에게 늘 놀라움을 안겨준다. 가장 획기적인 발견은 해저 지각의 갈라진 틈에서 나타나는 ‘열수분출공(hydrothermal vent)’이다. 1977년 동태평양 갈라파고스제도 근처 해저에서 뜨거운 물과 미네랄이 분출되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유인 잠수정 앨빈(Alvin)호 탐사에서다. 열수분출공 주변에서 발견된 특이한 생물들은 모두에게 큰 충격을 줬다. 350도의 고온과 250기압의 고압인 극한 환경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열수분출공 주변 생태계의 기초 생산자는 열수에서 나오는 황화수소와 같은 화학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미생물이다. 이 미생물을 먹고 사는 갑각류, 무척추동물 및 심해 어류가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열수분출공 주변 생물의 발견은 생명체 기원과 생태계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다. 이번 암흑 산소 생성 발견도 열수분출공에서처럼 생명체 기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생명이 육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됐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암흑 산소를 발견한 스위트먼의 말이다.
암흑 산소 생성을 최종적인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암흑 산소 발견 논문이 발표된 후 이를 반박하는 논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암흑 산소가 발견된 북동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톤 존(CCZ)’은 상업적 가치가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되는 망간단괴 채굴 후보지다. 암흑 산소 발견 논문은 채굴을 준비 중인 기업에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채굴을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CCZ에서 채굴을 준비 중인 캐나다 광업회사 ‘메탈컴퍼니’가 반박에 앞장서고 있다. 스위트먼 연구팀이 진행한 실험의 방법론을 비판하고 생성된 산소는 망간단괴가 아닌 실험 오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해저에서 암흑 산소가 발생한다는 주장이 의심에 직면해 있다’는 제목으로 논쟁이 소개됐다. 다른 과학자들의 의견을 더해 증거가 약하다는 결론이다. 심해 암흑 산소 생성이 최종적인 사실로 인정받으려면 더 많은 관측과 연구가 필요하다. 망간단괴 표면의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와 산소 발생 과정 등을 확인해야 한다.
새로운 발견은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해는 간직한 비밀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스스로 치밀함을 지키려는 속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저명한 해양물리학자 헨리 스톰멜은 1988년 11월 미국해양학회 창립 기조연설에서 “현상 측면에서 해양은 예측보다 발견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역설했다. 계속되는 전 지구적 대규모 해양 조사와 발달한 관측 기술에 힘입어 해양의 과학적 이해 폭이 전에 없이 넓어졌지만 스톰멜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해양은 이해하지 못한 많은 신비가 존재하는 곳이며,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곳이다.
이재학 한국해양한림원 석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