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야 돈이 된다고?”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의 촬영지이기도 한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는 연안습지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삼달리 럭키슈퍼’ 뒤편으로 육지와 섬 사이를 연결하는 만이 형성되면서 생긴 습지에 물수리, 저어새 등 법정보호종 24종이 서식한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오조리 갯벌을 제주 제1호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동안 주민들은 갯벌을 보전하기 위해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 파래를 제거하는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을 중심부에 올레 2코스와 성산·오조 지질 트레일이 지나고 있어 더운 여름에도 예초 작업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쁜 농사철이나 일감이 많은 시기에는 마을 관리에 다소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제주도가 생태계 서비스지불제 사업을 시범 도입하면서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마을 관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관리 자원이 확보되면서 더 체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활용되지 못했던 마을 자원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조리 마을회관 옆 습지가 그런 곳이었다. 풀이 우거져 민원이 많았던 곳이었지만 생태계 서비스지불제 사업을 통해 잡풀을 걷어내고 연못을 만들면서 지금은 습지마을 오조리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됐다.
주민들은 정화 작업만 하지 않았다. 황근 증식에도 나섰다. 황근은 갈잎떨기나무로 국내에서 자생이 확인된 유일한 무궁화속 식물이다. 동네 오름인 식산봉이 자생지였지만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었다. 지난해와 올해 습지 주변부에 총 450그루를 심었다. 1~5m 높이로 자라는 특성을 활용해 습지에 서식하는 철새들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분리시키는 가림막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생태해설사, 마을해설사 양성과정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현재 20여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중요 자원인 습지와 갯벌을 중심으로 한 생태관광 준비 작업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오조리 고기봉 이장은 29일 “주민들이 직접 가꿔 나가면서 마을 자원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게 됐다”며 생태계 서비스지불제의 효과를 설명했다.
규제에서 주민 참여로 방향 전환
제주도는 지난해 제주형 생태계 서비스지불제 조례를 제정하고, 예산 집행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9개 마을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올해는 19개 마을에서 진행 중이다. 내년 30곳으로 확대 추진한 뒤 2026년부터 정규 사업으로 전면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제주 경관을 형성하는 모든 자연자원을 행정기관이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름 초지 밭담 해안과 같이 도 전역의 자연물이 섬 전체 경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소유자 개인이나 마을 차원의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방법을 찾던 제주도는 환경보전의 패러다임을 행위 규제 방식에서 민간 참여를 통한 인센티브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주도는 현재 있는 자원을 가꾸거나 사라진 자원을 복원하는 마을별 사업 계획을 심사해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귀포시 하례2리는 천연기념물이자 관광 명소인 효돈천과 쇠소깍 주변 다리를 깨끗하게 정비했고, 제주시 저지리는 저지곶자왈에 자생하는 희귀식물 백서향을 증식·복원하는 등 도 전역에서 환경 개선 사업이 활기차게 진행됐다.
전국이 주목하는 이유
제주형 생태계 서비스지불제는 많은 지자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보호구역 중심인 정부의 생태계 서비스지불제 계약과 달리 도 전역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 서비스지불제는 점차 고령화되는 지역에서 생태관광을 활성화할 수 있는 모델로써도 의미가 크다. 여기에 일한 만큼 비용을 받기 때문에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제주도는 일반적인 인부 임금의 75%인 12만5000원을 일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가 주최하고 환경부·제주도·전북도가 주관한 생태계 서비스지불제 확대 적용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생태계 서비스지불제를 환경 보전, 생태관광 활성화, 공익 일자리 창출 등 지속가능한 지역경제와 연관해 키워가기 위한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전문가들은 “자연자원은 관리 주체가 모호한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생태계 서비스지불제는 보상과 계약을 통한 시장적 해결 방법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른 지자체들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경기도 시흥시는 지난 4월 추진 조례를 제정했고, 충남도 전북도 경남도는 조례를 준비 중이다. 특히 전북도는 생태계 서비스지불제 영역을 ‘체류형 생태관광지’ 분야까지 넓혀 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 도입이 초기인 만큼 과제도 많다. 생태계 서비스지불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서비스의 가치를 평가해 이를 토대로 대상을 선정하고, 지불금액을 결정해야 한다. 자칫 쇠퇴지역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만 접근할 경우 본래 취지가 흐려진다. 시행 기간도 중장기적으로 설정해야 지속가능한 관리가 가능해진다.
제주도는 마을이 생태관광 자원을 가꿔갈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기업의 사회 기여 사업이나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와 연계한 민간 투자로 재원 조달체계를 다양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강애숙 제주도 기후환경국장은 “생태계 서비스지불제를 통해 주민과 공동체가 생태계 보전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합당한 보상을 받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자연 보전과 지역경제 활성화, 모두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