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안정복 (9) 해외선교 나갈 때 필수품 1호가 된 ‘미가엘 찬양반주기’

입력 2024-09-27 03:03
안정복(오른쪽) EM미디어 대표가 1990년대 중반 극동방송 라디오 부스에서 찬양반주기를 사용하기 전 선곡표를 검토하고 있다.

미가엘 찬양반주기를 만들어 우선 국토 최남단 제주도와 마라도에서 사역하는 목사님과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에게 각각 한 대씩을 선물했다.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만든 물건이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미가엘 찬양반주기는 사업 아이템으로도 훌륭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실감케 한 제품이기도 했다. 가령 마라도로 보낸 찬양반주기는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했다. 그 교회 인근엔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교회에서 24시간 흘러나오는 찬양 반주기 소리에 호기심이 동해 교회를 찾았고, 그는 교회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보다가 예수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환상을 보게 됐다. 너무 두려워 그는 교회 사택 문을 두드렸다. 목사님은 사업 실패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그 남성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함께 기도합시다. 찬양 소리를 듣고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남성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사업에 매달려 재기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영접한 것은 불문가지다.

이렇듯 미가엘 찬양반주기 덕분에 내가 경험한 은혜의 에피소드는 한두 개가 아니다. 나는 찬양반주기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국민일보를 포함한 교계 매체에 꾸준히 광고를 실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극동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사용되면서 크게 명성을 떨치게 됐다. 당시 극동방송에서는 평일 정오에 국내 목회자들이 참여하는 ‘라이브 찬양’ 코너가 있었는데 이때 반주를 맡았던 것이 미가엘 찬양반주기였다. 프로그램의 인기가 대단해 방송이 전파를 탈 때면 방송국 전화기가 쉴 틈 없이 울리곤 했다. 찬양반주기의 인기도 날이 갈수록 치솟았다. 이 제품을 선교지에 보내고 싶다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후원도 이어졌다.

물론 제품을 내놓자마자 판매가 잘 됐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광고를 하고 이 제품의 품질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찬양반주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다. 많을 때는 한 달에 500대 이상 팔리기도 했다.

명품은 세월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계속 다듬고 고치면 그 제품은 언젠가 명품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미가엘 찬양반주기가 그런 경우다. 그것은 한국에만 있는 독보적인 제품이었다. 언젠가부터 선교사들은 이 제품을 이렇게 부르곤 한다. 해외 선교를 나갈 때 챙겨야 할 필수품 1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찬양반주기를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직접 만든 제품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나의 꿈을 실현할 도구였다. 밤낮없이 나는 이 제품에 매달렸다. 주야장천 찬양반주기 생각만 하면서 거의 매일 야근을 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보따리 싸서 그냥 집에서 나가라고 타박하기도 했었다.

찬양반주기를 만든 뒤 심지어 이런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다. ‘이 제품은 세상에 내놓기 싫다.’ 왜냐하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나만 보고 싶고, 나만 즐기고 싶은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미가엘 찬양반주기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