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으로 고성능·고용량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메모리 가격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AI 서버 구축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반면 수요가 부진한 PC·스마트폰용 D램은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이 하락세다. HBM보다 범용 D램 제품의 판매 비중이 높은 메모리 업체들은 하반기 실적에 먹구름이 낄 전망이다.
24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범용 D램 제품(DDR4 8Gb 1Gx8)의 지난 8월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전월 대비 2.38% 떨어진 2.05달러로 집계됐다. 고정 거래 가격은 기업 간 거래 가격이다. 지난해 8월 이후로 줄곧 상승하거나 보합세를 보이다 1년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다.
반도체 선행 지표로 불리는 D램 현물 가격 역시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상승세가 꺾였다. D램 현물 가격은 대리점을 통해 일시적으로 이뤄지는 거래 가격으로 시장의 매매심리를 즉각 반영한다. 현물 가격이 형성된 후 약 4~6개월이 지나면 고정 거래 가격에 수렴한다. 범용 D램 ‘DDR4 8Gb 2666’의 현물 가격은 지난 6일 기준 1.971달러로 연고점을 기록한 지난 7월 대비 1.5% 내렸다. 용량이 더 큰 ‘DDR4 16Gb 2666’ 가격은 지난 7월 대비 1.6% 하락한 3.814달러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경기가 이전만큼 회복하지 못하면서 PC와 스마트폰의 재고 소진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이 AI 기반의 고성능 신제품을 기다리는 등 제품 구매가 지연되면서 범용 D램 시장이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KB증권은 지난 1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3분기 PC와 스마트폰 업체들의 메모리 모듈 재고를 평균 14주로 추정했다. 관련 업체들이 보수적인 부품 구매 전략을 취하면서 연말까지 D램 조달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범용 D램 제품의 가격 하락은 메모리 업체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AI 투자 확대로 HBM 매출은 늘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 업체의 경우 범용 제품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엔비디아에 가장 많은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HBM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0% 증가했지만, 연간 D램 매출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대에 그친다. 아직 엔비디아에 HBM 공급을 본격화하지 못한 삼성전자는 HBM 매출 비중이 한 자릿수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D램 제품의 매출에 따라 해당 분기의 실적이 좌우된다”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