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빌더 출신 ‘헬스 목사님’
최근 경기도 고양의 한 피트니스센터. 오전부터 유누리(39) 목사와 김효용(53) 집사가 짝을 이뤄 운동하고 있었다. 레그프레스와 로잉머신 등 다양한 상·하체 근력 운동 기구를 번갈아 하면서 이들은 저절로 새어 나오는 탄성을 흘리며 땀을 흘렸다. 두 사람은 ‘운동 메이트’이지만 경기도 파주 라이프교회의 담임목사와 성도의 관계이기도 하다. 김 집사는 지난해 4월 사업으로 힘든 나날을 보낼 때 유 목사가 운동하자고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5㎏ 체중 감량은 물론 삶도 변했다고 김 집사는 고백했다. “근육과 영성의 성장 중 어떤 것이 더 기쁘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두 영역은 같이 성장하더라고요. 4대째 신앙 가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제야 주일을 사모하는 마음을 알게 됐어요. 골프를 치던 친구들에게 ‘우리 교회에 한 번 오라’며 전도하는 저를 보고 아내마저 놀랍니다.”
보디빌딩 대회 우승자이기도 한 유 목사는 원하는 성도와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 개인 지도를 한다. 성도들이 언제든 운동할 수 있도록 일산의 한 휘트니스센터와 계약하기도 했다. 주일예배에도 건강한 분위기는 이어진다. 예배 후 함께 스트레칭을 하거나 주기적으로 산책에 나선다.
유 목사가 목회에 운동 사역을 접목한 것은 코로나19가 극성이던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형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부산에 머물던 때였다. 유 목사는 “심방을 간다고 하면 부담스러워 하지만, 같이 운동하자고 하면 격의 없고 편안한 대화로 이어진다”며 “놀고 싶고 먹고 싶은 것 참고 피트니스센터에 운동하러 온 분들을 보면서 ‘이런 자제력과 절제를 가진 분들이 영성까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며 웃었다.
‘여행서도 뛴다’ 2년간 1200㎞ 기록
일터인 서울 중구 장충교회 앞 한 커피숍에서 최근 만난 안성은(41) 목사는 “저보다 러닝에 더 진심인 분들이 더 많을 텐데…”라며 겸손으로 첫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 그는 이날도 새벽기도 후 1시간가량을 달렸고, 곧 태어날 셋째의 태교 여행차 간 유럽에서도 거의 매일 아침, 현지 동네를 질주했다고 했다. 휴대전화 앱엔 그가 2년간 1200㎞를 달렸다고 기록돼 있다. 그는 장충교회에서 교구 담당 부목사를 맡고 있다.
안 목사는 일주일에 3~4회씩 새벽기도를 마치고 6시10분쯤부터 6~7㎞가량 러닝을 하고 있다. 달리기는 이전 사역지인 대구의 한 교회 담임목사의 권유로 시작했다. 지난해 사역지를 옮기면서 러닝은 그의 취미가 됐다. 아침잠을 반납하고 운동한 덕에 얻은 것은 많다. 안 목사는 “저 역시 다른 교역자들처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운동을 소홀히 했었다”며 “러닝을 한 뒤 만성피로가 사라지고 체력이 좋아졌고 덕분에 사역의 효율도 올라갔다”고 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새벽 러닝’ 일상을 자주 올린다. ‘달리며 나눈다’는 취지로 10㎞를 뛸 때마다 선교 헌금을 낸다는 목표를 실천한다. 이런 소식은 1000명에 달하는 팔로워에게 전달된다. “단순히 내 건강만을 위해 달리는 게 아닌 이웃에 나눌 수 있다는 의미를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목사이니까 헌금을 하겠지만 믿지 않는 분들은 각자에게 맞는 선행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안 목사의 SNS를 보고 ‘다시 러닝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는다. ‘러닝이 좋냐’고 물어보는 교역자나 성도들에게 아는 선에서 방법 등을 조언해준다. 전국엔 그의 사진에 자극을 받아 러닝하는 목사가 생겼고 현재 교회에선 그와 함께 마라톤대회에 나가는 성도가 여럿이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자연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 어렵잖아요. 러닝을 통해 매일 달라지는 아침을 만끽하고, 달리지 않았다면 가보지 않았을 길을 뛰면서 하나님의 창조물을 몸으로 느끼며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에 참 좋습니다.”
안 목사는 “과거엔 목회자가 무슨 운동이냐며 지적하는 소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본래의 사역을 뒷전으로 미루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육체를 잘 가꾸고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운동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웃었다.
‘주짓수·권투’로 약자 섬기다
서울 양천구 한성교회 5층엔 푹신한 매트가 깔린 태권도장 같은 예배실이 있다. 교회가 장애인 성도를 위해 만들었는데 성도와 주민을 위한 주짓수 교실이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21일에도 2학기 주짓수 수업이 한창이었다. 수업에는 15명이 참여했다. 장애인 주일 예배와 체육 강의를 이끄는 노신일(42) 홀리킥사랑부 목사는 “운동이 교회의 경계를 낮추거나 허물 수 있다”며 “수강생들에게 주짓수 수업에 참여했으니 예배에 오시라고 강권하기보다는 재밌는 교회 행사가 있으면 안내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린다. 그런 형태로 교회에 나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이날도 한 교회 청년의 아버지가 주짓수에 관심이 있어서 처음 교회 문턱을 넘었다.
노 목사는 주짓수 스승이자 총신대 동문인 최현수(50) 경기도 안성 대덕교회 부목사를 강사로 세웠다. 최 목사는 유도 선수 출신이자 국내에 흔치 않은 주짓수 블랙벨트 유단자다. 노 목사는 유도 공인 3단으로 대한이종격투기연맹 지도자 자격을 획득했다. 최 목사 역시 운동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데 진심이다. 체육관을 운영하던 40대 초반 신학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최 목사는 “매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며 “운동을 통해 목회자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노 목사도 “기독교 신앙이 없는 주짓수 수강생과도 격의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은 운동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운동 효과는 장애인 예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고 노 목사는 말했다. 예배 전 놀이를 겸해 운동을 시작한 뒤 어린이와 청소년부 성도들이 이전보다 찬양과 기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놀 땐 놀고 예배드릴 땐 예배하는 절제의 개념도 생긴다고 했다. 스승과 제자 개념이 확실한 운동을 통해 예절과 존중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노 목사는 “장애 자녀를 태권도장에 보내려고 했는데 여러 이유로 등록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낙심한 부모님에게 ‘토요 주짓수 교실에 오시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장애 아이들 때문에 어디를 가도 노심초사하는 부모님에게도 편안한 안식처를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홀리킥사랑부에는 30여명의 장애인 성도가 모인다. 현직 교사, 태권도 사범, 재활병원 간호사 등 다양한 직업군 성도가 봉사자로 함께 예배를 드린다. 노 목사는 권투를 배우고 싶다는 성도 4명과 주일 예배 후 개인 강습을 해주고 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