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는 한반도의 한가운데 자리해 중원(中原)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로, 고구려·백제·신라의 각축장이었다. 백제의 땅이었다가 5세기 무렵 고구려 장수왕이 중원을 차지하고 ‘충주 고구려비’를 세웠고, 6세기 중반 이곳을 평정한 신라는 제2의 수도 ‘중원경’을 세워 세를 과시했다.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 충주시 중앙탑면이다.
가장 먼저 백제 땅이었을 때 유적으로 장미산성이 있다. 장미(薔薇)라고도 쓰고 장미(長尾)라고도 쓴다. 영토와 백성을 지키는 보루이자 침략 전초기지로 창칼이 서로의 심장을 겨눈 전장에 붙은 이름이다. 첫 번째 ‘장미’는 장미산에 남아 있는 장미와 보련 남매의 슬픈 전설에서 따왔고, 두 번째 ‘장미’는 산의 형국이 긴 꼬리를 닮아서 붙었다.
전설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보련과 장미라고 하는 남매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 둘 다 장수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한쪽은 희생이 돼야 해서 각자 보련산과 장미산에 성을 쌓는 것으로 내기했는데 남동생인 장미가 누나 보련을 이겼다고 한다.
장미산성은 과거 고구려 성곽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지만 발굴 결과 백제에 의해 가장 먼저 축조됐고 이후 고구려에 잠시 점령됐다가 최종적으로 신라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됐다.
백제 다음으로 충주에 들어온 나라는 고구려였다. 광개토대왕(재위 391~413년)은 한강 유역까지 진출했고, 그의 아들인 장수왕(재위 413~491년) 때 남진정책이 완성된다. 충주를 차지한 고구려는 장미산성을 국경의 요새로 만들었다. 장미산성은 신라가 차지할 때까지 70년간 고구려의 성이었다. 신라는 진흥왕 9년(548년)부터 진흥왕 12년(551년)까지 죽령 이북 10개 군을 차지했다. 그때 충주는 신라 땅이 됐다.
산성은 중원을 내려다보는 해발 337m 장미산 정상과 계곡 등 정상부 둘레를 에워싸고 있었다. 지금은 그 성벽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성의 규모는 높은 곳이 5m, 너비는 5~10m, 둘레는 3㎞ 정도다. 동북쪽 성벽에 나무 기둥을 여러 개 박아 만든 치성이 발견됐다.
장미산 기슭에 있는 ‘장미산마을’에서 승용차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성곽 바로 앞에 닿는다. 굽이도는 성곽길이 유려하게 이어진다. 성곽 위에 난 길을 걸어 끝에 닿으면 넘실거리는 산줄기와 유장하게 흐르는 남한강이 시원한 풍경을 펼쳐놓는다.
장미산 남쪽에는 충주고구려비전시관이 있다. 충주고구려비는 고구려가 충주까지 영토를 넓혔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다. 5세기 말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유일의 고구려비로, 국보 제205호로 지정됐다.
일대가 선돌마을이다. 마을에 돌이 서 있어서 이름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마을에 사는 전의 이씨가 공을 세워 임금이 그에게 땅을 하사했는데, 땅의 경계를 선돌로 정했다. 1979년까지 그 돌이 고구려비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고구려비전시관 입구로 들어가서 통로를 따라가면 당대 동북아시아 최정예 기마부대인 개마무사 조형물이 반긴다. ‘개마’란 갑옷을 입힌 말을 의미한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고구려의 기상이 깃든 충주고구려비가 우뚝 서 있다.
우주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을 방문해 보자. 천문과학관은 밤에 별을 보기 위해 찾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낮에도 볼거리가 있다. 바로 태양이다. 천체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면 탁구공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태양 안에 거뭇거뭇하게 보이는 흑점이 신비롭다.
요즘 충주를 찾는다면 충주의 절경 ‘악어봉’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1일부터 대미산에 악어봉 탐방로(월악로∼악어봉전망대) 0.9㎞ 구간이 개방됐다. 과거 야생동물보호구역 문제 때문에 법정 탐방로 지정이 안돼 입산이 금지됐지만, 2020년 12월 보호구역이 해제돼 탐방로가 조성됐다.
이름은 탐방로의 끝 전망대에서 보면 남한강을 막아 만든 충주호 주변에 여러 마리 악어가 모여 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졌다. 물에 잠긴 낮은 구릉의 구불구불한 수변이 물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악어 떼를 연상케 한다. 전망대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구간이 있지만 그만한 수고로움으로 보상받기 황송할 정도의 풍경이 기다린다.
여행메모
‘왕의 온천’ 수안보에서 따뜻한 온천욕과 꿩요리… 내달 2~6일 탄금공원 ‘우륵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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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산성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 충주 시내에서 장미산성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드물고 버스를 타고 가더라도 산성에서 2㎞ 남짓 떨어진 장천리 마을 어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걸어야 한다. 자가용이 없으면 택시를 타는 편이 낫다. 성곽 입구에 조그마한 무료 임시주차장이 있다.
장미산성은 시계 방향으로 탐방을 시작하는 것이 발품을 덜 수 있다. 성벽은 4~6m 높이를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린 만큼 가장자리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고구려천문과학관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2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관하며 다음 날 휴관한다. 중간 오후 5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휴게 시간이다. 요금은 1000~3500원이다. 주차는 무료다. 고구려비전시관은 입장도 주차도 무료다.
악어봉 입구는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나들목에서 나와 단양 방면으로 36번 국도를 타고 가다 충주 월악나루터 가기 전에 있다.
충주에서 ‘왕의 온천’ 수안보를 건너뛰고 가면 섭섭하다. 온천욕을 하고 이색 보양식인 꿩 요리를 맛볼 수 있어서다. 꿩생채와 꿩회, 꿩만두, 꿩사과초밥, 꿩꼬치, 꿩불고기 등 쉽게 맛볼 수 없는 음식들이 미각을 사로잡는다.
다음 달 2~6일 충주탄금공원 일대에서 우륵문화제가 열린다. ‘문화의 중심 충주, 예술로 다시 서다’를 슬로건으로 공식행사와 예술문화프로그램, 예술문화체험, 지역예술콘텐츠 홍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충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