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청소년·청년 자살률 증가 추세… 새로운 공동체 필요해”

입력 2024-09-25 03:07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장동선 궁금한뇌연구소 대표(왼쪽부터)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한국사회의 자살예방을 위한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참석자>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장동선 궁금한뇌연구소 대표


자살예방은 한국 사회의 묵은 난제다. 과거와 달리 요즘 세대는 개인화가 심화되고 공동체성이 약화되면서 사회의 유기적 연결망이 느슨해진 지 오래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은 외로움 속에서 발버둥치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최근엔 한국의 높은 자살률과 낮은 정신건강 인식의 위험성을 국내외적으로 알리고 정부와 관련 단체, 기업 등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마인드SOS’라는 정신건강 솔루션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열고 마인드SOS 고문으로 동참한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와 자살예방 전문가인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뇌과학자 장동선 궁금한뇌연구소 대표로부터 자살예방을 통한 한국사회의 건강한 미래 청사진을 청취했다.

-한국이 ‘자살률 1위’ 오명을 쓰게 된 배경에는 ‘외로움’과 ‘비교의식’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타인과의 비교는 개인의 심리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김용 전 총재=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의 소셜미디어 노출이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외로움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최근 유명 배우의 자살 이후 약 10% 증가했다. 이러한 문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다. 일본과 핀란드 사례를 통해 방안을 모색해볼 수도 있다. 자살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백종우 교수=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와 가족 구조의 변화로 1인 가구 비율이 40%에 가까워지며 대가족의 사회적 지지가 약화됐다. 이러한 변화로 외로움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고, 특히 청소년과 청년의 자살률이 증가 추세다. 과거에는 대가족의 지원이 있었지만 오늘날엔 소가족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현상은 일본과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공동체와 안전망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장동선 대표=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뇌 과학적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의 뇌는 가치 판단 자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한다. 그러므로 내가 갖고 있는 가치는 늘 내 주변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뇌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이러한 비교가 자아와 정신 건강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피드백을 받는 경우, 불안과 사회적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오프라인에서의 인간 교류가 결여될 경우 건강한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기 어렵다. 직접적인 사람 간의 교류가 필수적인 이유다.

-한국은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을 받으러 간다고 하면 ‘정신적으로 이상 있는 사람’이라는 낙인효과가 발생한다.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곤 한다. 한국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갈 수 있는 제안을 해준다면.

장 대표= 경찰 소방관 의사 등의 직업군에서 정신과 상담을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원인이 비교와 경쟁에 있기 때문인데, 상담을 받는 것이 개인의 나약함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사회와 회사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수영선수인 마이클 펠프스와 같은 유명인의 우울증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정신적 아픔을 공유하고 자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정신 건강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인식돼야 한다. 인식이 변화하면 상담 문화도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

백 교수= 실제로 정신 건강 문제에서 ‘낙인’은 환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 환자를 만나는 의사로서는 가장 뼈아픈 일에 속한다. 많은 환자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거나 주변이 위기를 인식하지 못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살 예방 교육의 의무화와 같은 시스템적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미국의 경우 조퇴 사유의 1위가 스트레스, 2위가 우울감이다. 감정적으로 안정적이지 않거나 변화가 느껴지면 언제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 자살 고위험군 환자가 보내는 경고 신호를 주변인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김 전 총재=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1981년부터 1996년까지 정신 질환보다 더 큰 낙인을 가진 질병은 에이즈(HIV)였다. 유명 배우 록 허드슨과 농구 선수 매직 존슨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화의 방향이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정신 질환에 대한 공감(compassion)이 부족하다. 자살 생존자에 대한 낙인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신 건강 분야에서도 적절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은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멘탈 응급조치’와 같은 개념을 도입해 사람들이 서로를 살필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낙인을 줄이고 자살과 사망 수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1955년 세계은행에 가입 이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출산율은 급감했고 자살률은 급증했다. 부유해지면 행복해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불안감과 우울증에 빠지는 비율이 높아졌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김 전 총재= 영국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에서는 농촌에서 산업화하기까지 약 7세대가 걸렸다. 반면 한국은 2.5세대, 중국은 1.5세대, 즉 30여년 만에 급격한 발전을 이뤘다. 1955년 세계은행 가입 당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절망 그 자체였다. 한국을 ‘탄광 속 카나리아’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갈등 역시 정신 건강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우울증에 시달리고, 외로움을 느끼며 자살을 고민한다면 행복한 결혼과 출생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한국이 즉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다. 충분히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자살을 결정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기까지 뇌에선 어떤 반응이 일어나나.

장 대표= 다양한 경우가 있기에 하나의 변화만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논문이나 연구에 따르면 자살 직전의 사람은 인지 능력과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 주변 사람의 감정이나 반응을 고려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 첫째로 깊은 고독감으로 자신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둘째 자신이 타인에게 짐이 된다고 느끼며 무능력감과 중압감을 경험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무뎌져 자해나 자살이 쉽게 이뤄지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자살은 국내 병원 간의 의료적 협력을 통해서도 예방할 수 있지 않나. 협력할 지점이 있을까.

백 교수= 자살 예방을 위해 의료·복지·정부·민간 NGO의 협력이 중요하다. 미국 뉴욕주에서는 자살 사망자의 약 70%가 사망 전 정신 건강 서비스에 접촉한 사실을 바탕으로 의료기관의 자살 예방 교육을 의무화했다. 한국에서도 자살 고위험군 조기 발견을 위한 의료인 교육과 의료 시스템 강화가 필요하다. 영국의 ‘오렌지 버튼’(자살 예방 상담이 가능한 사람을 식별하는 제도)처럼 자살 위기자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