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괜찮지 않은 사람들

입력 2024-09-23 00:37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8부작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에는 매회 이 같은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높이 솟아오른 나무들로 둘러싸인 숲 한가운데에서 주인공이 두리번거리는 모습, 평범했던 아침에 부지런히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이던 일상의 장면이 교차 편집되며 담담하게 읊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 ‘쿵’ 소리가 났다는 것일까 나지 않았다는 것일까.

처음엔 흘려들었다. 중요한 대목이겠지만 마음에 굳이 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긴장감을 높이는 말이라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회차가 시작할 때마다 끈질기게 질문을 해오니 어느 순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자문의 시간에 다다른다. ‘쿵 소리가 났을까, 나지 않았을까. 소리가 났다면 사람들은 이 소리를 잘 들을까, 못 들을까. 소리를 놓쳤다면 그것은 못 들어서일까, 안 들으려 했기 때문일까.’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더 프로그(The Frog)’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를 떠올린다면 얼추 맞아떨어지는 상상이다. 상상력을 조금 더 키워보자. ‘쿵’ 소리가 함정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피어오른다. 생각이 확장된다. ‘중요한 건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면서 내는 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크게 울려 퍼진 “쿵” 소리에 집중하느라, 힘없이 바스러지고 마는 작은 생명의 가느다란 외침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면 어쩌나. 커다란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느라 더 많은 신음을 외면하며 작은 무언가를 계속 밟고 지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는 요컨대, 잘못한 것 하나 없이 허망하게 일상의 터전을 침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들의 우여곡절을 따라가다 보면 몹시 마음 졸이게 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사회 곳곳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잘못한 일 없이 겪는 불운과 불행 말이다. 등장인물의 불운은 뭇사람의 공감력을 올려주는 도르래가 된다.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의 가느다란 숨소리를 빠뜨렸다간 불행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무참한 불운을 내가 겪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메타인지가 가동된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소리가 ‘쿵’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선사한다.

지난달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벌어진 전기차 화재도 비슷한 맥락의 사고다. 많은 이들이 ‘쿵’ 소리를 따라다녔다. 뼈대만 남은 벤츠 전기차, 시커멓게 그을린 지하주차장, 완전히 불타버린 42대의 승용차들. 800여명의 이재민과 부분 파손된 45대의 차량을 포함해 시커멓게 그을린 800여대의 차량. 아파트 단지에 내걸린 ‘전기차 주차 불가’ ‘외부 전기차 주차 금지’ 같은 현수막들. 이미지와 수치가 내는 ‘쿵’ 소리를 좇았다.

발화점이 된 전기차 제조사인 메르세데스벤츠는 아직 ‘도의적 책임’만 언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해 완성차 기업마다 “전기차는 안전하다”는 근거를 부단히 제시해 왔다.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파트 관리 주체와 건설사는 어떤 발언도 삼간다. 공식적인 원인 규명만을 기다릴 뿐이다. 사실상 모두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련의 것들 모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큰 소리만 따라다니다 보면 피해자 개개인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맹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작은 신음’에도 언제나 기울여야 한다. “원래대로만 돌아가게 해주면 좋겠다”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모든 책임자들의 마음에 머무르길 바란다.

문수정 산업2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