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글로벌사우스와 한국의 발전경험

입력 2024-09-23 00:32

글로벌사우스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아이켄베리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세계가 글로벌웨스트, 글로벌이스트 그리고 글로벌사우스의 느슨한 세 진영으로 재편되는 국제정세의 최근 흐름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냉전기에도 제3세계와 비동맹운동이 있었지만 냉전이 끝나며 제3세계의 범주도 사라졌다. 이후에는 개발도상국으로 주로 불리다가 미·중 경쟁이 심화하면서 별도의 유동적 진영으로서 글로벌사우스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과거 제3세계에 비해 글로벌사우스는 더 큰 중요성을 지닌다. 국제정치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 80억명 중 50억명이 글로벌사우스에 있다. 그리고 2023년 기준으로 세계 GDP(국내총생산) 총액의 약 40%를 차지하게 되었다.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 같은 해 G7(주요 7개국)의 GDP 비중은 26%였다.

글로벌사우스는 내부적으로 국가 간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편차가 크고 다양해서 단일 진영으로 뭉쳐 행동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또는 서방과 권위주의 세력 간 경쟁 속에서 국제여론을 좌우하고, 그럼으로써 지정학적 경쟁의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미·중 경쟁은 누가 국제적으로 더 큰 연합을 형성하느냐의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어 연합 대상으로서의 글로벌사우스가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경제 지원과 투자를 앞세워 글로벌사우스 공략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이 과거 비동맹의 주도국이었고, 경제적 고속성장을 이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이 서방에 비해 까다롭지 않은 조건으로 원조와 투자를 제공한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중국 발전 모델은 글로벌사우스의 권위주의 지도자에게 매력적이다.

중국의 원조와 투자는 실제 성장에는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지원받는 국가를 종종 ‘부채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효율적 투자가 이뤄지지 못해 기대수익을 못 거둔 채 막대한 채무만 떠안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서방은 이러한 문제점을 정당하게 지적하지만 서방이 내세우는 투명성, 인권, 노동조건, 환경 등의 원조와 투자 조건은 까다롭게만 여겨진다.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은 과거 제국주의 세력이었던 서방의 이중성을 떠올리며 불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발전 경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크다. 한국의 발전에 관한 관심은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중국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적 발전 모델의 대안으로서 한국형 발전 모델이 새로이 주목받는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은 이제 글로벌웨스트의 새로운 일원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제국주의 대신 식민지 경험을 지닌 채 발전을 이룬 독특한 이력은 글로벌사우스에 어필할 수 있는 자산이 됐다. 서방 안에서도 한국이 글로벌사우스에 대한 관여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국 경험에 관한 관심은 주로 한국이 어떻게 산업정책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뤘는지에 쏠려 있지만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경제정책 및 정치체제의 전환이다. 한국은 1960년대에 권위주의 정부 주도로 고속성장에 시동을 걸었지만 정부 주도형 성장이 문제점을 드러내자 70년대 말부터 경제 자유화를 추진했다. 10년 정도 시간 격차를 두고 정치적 민주화도 이루었다.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전환을 기반으로 한국은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80년대 이후에도 지속적 성장을 이루었다. 향후 학계와 정부는 한국의 발전 경험에 관한 연구를 심화해 우리가 글로벌사우스에 대한 정책의 배경 담론으로 더욱 발전시키고 정교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