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가 대한민국의 시급한 과제인 ‘저출생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북도의 정책과 사업이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조를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지난 6월 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을 공식화했다.
이날 발표된 대책에는 그동안 정부 대응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인구전략기획부 및 저출생 수석실 설치, 특별회계 신설, 사회구조 개혁 등 기존과 다른 시각에서의 대책들이 포함돼 눈길을 모았다. 지난달 29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에서도 연금·의료·교육·노동 등 4대 개혁에 저출생 대응을 더한 ‘4+1 개혁’이 강조돼 저출생 문제 해결에 대한 대통령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부와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는 ‘저출생과 전쟁’에 절박함으로 대응해 온 경북도의 눈물겨운 사투의 성과다.
정부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대통령 주재 저출생 대책회의에 경북도를 지자체 대표로 참석시키며 그간의 노력을 인정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7월 전국 지자체 중에서는 가장 먼저 ‘저출생과 전쟁본부’를 출범시키고 전면전에 나섰다. 정부의 인구전략기획부 설립에 한발 앞선 조치다. 정부와 경북도가 이렇게 나서게 된 데는 우리나라 출산율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인식이 작용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 해 사회 유지에 필요한 새로운 인구가 70만명이라 볼 때 20만명 밖에 태어나지 않으니 이는 해마다 인구 50만명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저출생 문제가 이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도지사는 가장 큰 근본 원인을 수도권 집중과 교육 제도로 보고 있다. 한 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 인구는 10만명 정도다.
그러나 이들은 계속된 경쟁과 높은 집값에 내몰리며 점점 지쳐가게 되고 결국 만남부터 결혼, 출산까지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이 도지사는 “너도나도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유목민 사회’가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취직하고 가정을 이루어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정주민 사회’로 틀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극심한 경쟁 사회를 탈피해 꼭 필요한 교육을 받고 일찍 사회에 진출해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중장기적 과제는 차근히 풀어가더라도 돌봄, 주거 등 눈앞의 당장 시급한 과제들은 경북도가 직접 해결에 나섰다. 경북도는 지난 5월 만남부터, 출산, 돌봄, 주거 등 저출생 전주기를 다룬 100대 실행 과제를 내놓고 하반기 본격적인 추진중이다.
우선 청춘 남녀의 절반 정도가 만날 상대가 없는 점에서 청년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경북도내 내 남녀성비는 20대만 놓고 보면 여성 100명 대 남성 134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성비 불균형이 심했다. 이에 청춘동아리, 솔로마을 등 매칭사업을 진행해 봤고 그 결과는 예상보다 놀라웠다. 청춘동아리는 1기 남녀 최대 신청률 남성 14:1, 여성 3.4:1을 기록하면서 신청 단계부터 이미 열기가 뜨거웠다. 매칭률도 총 3번 만남 주선에서 44%, 46%, 52%를 기록하며 절반에 가까운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현장에서 호응도가 높은 사업이다. 도는 만남을 이어가는 커플에게는 12월 국제 크루즈 관광도 보내줄 계획이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는 주거 또한 큰 부담이다. 2022년 국토부 주거 실태조사에서도 청년들은 가장 필요로 하는 주거 대책으로 자금 지원을 꼽았다. 경북도는 월세와 전세 이자를 지원해 이들의 부담을 해소하는 동시에 도내 시·군 곳곳에 700호의 매입임대주택과 도청 신도시에 돌봄 특화 공공임대 주택 756호를 지으며 공공 인프라 공급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특히 출산을 주저하는 데는 ‘돌봄’이 큰 걱정거리였다. 경북도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개인의 부담과 희생이 아니라 가장 큰 행복이 되도록 나라가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경북도가 디자인한 공동체돌봄인 ‘K-보듬’을 통해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고 돌볼 계획이다. 내 집 가까이, 아파트 1층이나 공동시설에 전문교사와 자원봉사자, 소방·경찰관들이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노란 버스와 친환경 먹거리를 통해 이동과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다.
올해 5개 시군, 42개소에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내년엔 도내 전역으로 확산해 나갈 예정이다. 경북도는 기존 공무원 중심으로 매주 열었던 도지사 주재의 저출생과 전쟁 대책 점검 회의를 민간 전문가 협업 방식의 ‘저출생과 전쟁 혁신 대책회의’로 격상해 신규 사업 발굴과 혁신 대책 마련에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돌봄·주거 등 단기적 대책은 앞으로 계속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며 세밀하게 다듬고 수도권 집중, 사교육비 부담, 청년 이탈 등 저출생 극복에 좀 더 근본적인 대응 방안도 선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이 도지사는 “종교, 언론, 전문가 협업 등 다양한 접근으로 저출생 대응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가겠다”고 밝혔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