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란’ 없이 추석 연휴를 넘긴 응급실 상황은 한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확인해줬다. 우리나라 의료 환경은 ①필수·지방 의료 인력의 절대 부족과 ②병원 문턱이 너무 낮아 상급병원이나 응급실이 과밀화하는 쏠림 현상에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①을 해결하기 위한 의대 증원 과정에서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 공백이 발생했는데, 그럼에도 ‘빅5’를 비롯한 상급병원이 진료 시스템을 유지해온 것은 비(非)중증환자를 1·2차 의료기관에 분산한 제도적 대응 덕이었다. 상급병원 쏠림을 막아준 분산 조치가 이번 추석에는 응급실 쏠림을 완화했다.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 부담을 높이고, 연휴에 문 여는 1·2차 의료기관에 보상을 늘리는 등 몇 가지 룰을 바꾼 결과 추석 응급실 내원자가 20%(경증환자는 30%) 이상 감소해 중증환자 중심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의료진 사이에서 “응급실은 원래 이래야 하는 것”이란 말이 나왔다.
연휴에 임박해 결정된 한시적 분산 조치는 응급실 이용을 자제한 시민의식과 응급실을 지켜준 의료진의 헌신에 힘입어 추석 응급실 대란을 막아냈다. 연휴는 끝났지만 의료 공백이 여전한 상황에서 응급의료의 물리적 여건은 달라진 게 없다. ‘응급조치’였던 추석 연휴의 응급실 이용 체계를 이제 ‘뉴노멀’의 상시적 시스템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시민의식 대신 정교한 제도와 규정을 통해 중증환자 중심의 응급실 진료를 정착시키고, 의료진의 헌신에 기대는 대신 충분한 보상과 지원을 통해 응급의료 역량을 확충해야 할 때다. 상급병원과 응급실 쏠림 현상은 한국 의료전달체계의 고질병이었다. 전공의 집단 사직의 위기 상황이 역설적으로 그 해결 방향을 보여준 셈이 됐다. 왜곡된 시스템을 바로잡는 투자에 망설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런 개혁이 성공하려면 필수조건인 의사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 의대 증원은 후퇴할 수 없는 사안인데, 그 과정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일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의료계의 막무가내 저항에도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은 지속돼야 하며,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고 그 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