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 운동은 벼락같은 선물” “사회적 책임 깨닫고 사역 재정의”

입력 2024-09-21 03:07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던 제1차 세계복음화국제대회 모습. 국제로잔 제공

1974년 개최된 1차 로잔대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크리스천의 신앙과 사역에 깊숙이 스며들어 왔다. 한국교회 안에도 ‘로잔의 후예’를 자청하는 많은 사역자와 사역들이 있지만 놀랍게도 로잔대회나 그로 인해 파생한 로잔 운동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22일부터 인천 송도에서 4차 로잔대회가 열린다. 로잔대회는 한국교회를 포함해 전 세계 복음주의권 교회에는 ‘올림픽’에 버금간다. 대회를 앞두고 로잔 운동에 영향을 받은 두 명의 목회자를 최근 만났다.

산증인이 전하는 ‘나와 로잔’

학원복음화협 전 상임대표 이승장 목사

캠퍼스 학생운동의 대부로 잘 알려진 이승장(82)(전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 목사는 한국교회에서 로잔 운동의 역사를 몸소 경험한 몇 안 되는 로잔 운동의 산증인이다. 이 목사는 1972년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전도학 교수였던 폴 리틀과의 만남을 통해 로잔 운동을 처음 접했다. 당시 대학생성경읽기회(UBF) 간사로 활동하던 이 목사는 로잔대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리틀의 수행 비서 역할을 했다. 한경직(1902~2000) 당시 영락교회 목사의 사택에서 리틀과 한 목사 간 대화에 배석해 로잔대회의 목적과 성격에 대해 직접 듣는 기회도 얻었다. 그는 “복음 전도에 전념하던 내게 로잔 운동은 ‘벼락같은 선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해 봄 말레이시아 국제복음주의학생연합(IFES) 수양회에서 만난 존 스토트 목사도 그에게 로잔 운동과 복음주의에 대한 이해를 더 해줬다. 이 목사는 “책과 설교 테이프를 들으며 흠모하던 스토트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와 강해설교 워크숍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며 “이후 성서유니온 대회에 함께 가는 택시 안에서 무려 네 시간 이상 스토트 목사와 대화를 나눴고 이후 사역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로잔 언약 제5장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대목을 읽다가 ‘그래, 바로 이거야!’라며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당시 교회와 선교단체는 사회적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개인 구원과 경건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 목사는 이 언약이 복음 전도와 함께 사회 정의와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웠고 이를 통해 자신의 신앙과 사역을 재정의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1984년 ‘소리’라는 무크지를 발간해 로잔 언약을 한국교회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로잔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성서한국 이사장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이사장 구교형 목사는 로잔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실천해 온 인물이다. 1980년대 대학 재학 시절 그는 기독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했다. 구 목사는 “당시 한국 사회는 민주화의 열망이 불타오르던 시기였다. 기독 청년들은 신앙을 정치·사회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고 전했다. 그는 로잔 운동을 통해 ‘총체적 선교’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이 개념은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추구하는 신앙의 방향성을 제시했고 이를 통해 구 목사는 자신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게 됐다.

새로운 인식은 곧바로 그의 사역에도 반영됐다. 구 목사는 신대원을 졸업한 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간사로 활동하며 로잔 정신을 실천했다. 이후 남북나눔운동과 성서한국 등 단체에서 활동하며 로잔 정신을 구체화해 나갔다. 남북나눔운동에서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며 복음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데 집중했다. 성서한국에서는 복음주의 신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젊은이들이 사회 정의와 평화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이 모든 활동이 로잔 운동에서 비롯된 ‘총체적 선교’의 실천이었다.

구 목사는 “한국은 세계에 유례없는 로잔 정신에 따른 구체적이고 자생적인 실천 영역과 단체들을 30년째 수없이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라크 파병, 한반도 평화, 용산·세월호·핼러윈 참사 등 크고 작은 시국 상황마다 복음주의 교회와 단체, 개인들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깊이 스며든 로잔 정신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로잔 운동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미친 실질적인 영향력을 설명했다.

구 목사는 4차 로잔대회를 앞두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당부를 전했다. 구 목사는 현대 기독교의 위상 변화, 특히 한국 기독교가 처한 침체와 위기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21세기 문화의 핵심은 소통과 대화인데 한국 기독교와 교회는 불통과 변하지 않는 고집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총체적 복음 정신을 표방하며 50년 전 출발한 로잔 운동이 2024년 한국에서 대회를 치르는 만큼 단순히 화려한 잔치가 아니라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