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이름을 불러본다

입력 2024-09-20 00:32

“임종을 앞둔 어머니 병실을 나와/부고를 보낼 이름을 적어 본다// 별것 아닌 책 한 권 마무리하고/그 책 보낼 이름을 적어 본다// 참 많은 사람들과 함께/참 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공책에 이름 하나 적어 놓고 잠시 앉아/숨을 고르는 동안// 그 이름들이 내게 오고/나를 떠나는 것인데// 나는 또 한참 창밖을 망연하게 내다보다/이름 하나를 적어 본다.” 김남극 ‘이별은 그늘처럼’(걷는 사람, 2023)

추석 연휴라 그런지 시내가 한산하다. 얇은 시집 한 권 챙겨 들고 병원으로 간다. 얼마 전 엄마의 혈압이 떨어져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다. 면회시간은 15분. 병원 입구에서 방문자 명단에 이름을 적는다. 엄마는 입원실에서 콧줄을 끼고 누워 있다. 폐에 물이 차서 거칠게 숨을 쉴 때마다 고양이처럼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요를 덮은 작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오랫동안 요양원 생활을 한 엄마는 나를 알아볼 때도 있고,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 듯 나를 골똘히 쳐다보기도 한다. 그날, 엄마는 나를 알아보았고 이름도 불러 주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고(故) 현철의 노래를 튼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간호사가 드레싱카트를 끌고 온다. 장례식장 앞에서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맞은편 도로에서 공항리무진이 매끄럽게 도로를 빠져나간다. 나는 잠시 편의점에 들러 숨을 고른다. 이름 명(名) 자는 저녁 석(夕) 자와 입 구(口) 자를 쓴다. 저녁이 돼 어두울 때, 멀리서 오는 누군가를 식별하기 위해 이름을 불러본다는 뜻으로 만든 것이 이름이다. 이름은 사람이 사람에게 붙여주는 최초의 호명이다. 살면서 불렀던 많은 이들의 이름을 떠올려본다. 얼굴만 가물가물하고 떠오르지 않는 이름도 있다. 이름 부르고 떠나가며, 저마다 이름을 쥐고 살아간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