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한 나사렛 예수에게 직업이 있었을까. 신약성경은 예수가 ‘마리아의 아들 목수’로 불렸다고 기록한다.(막 6:3) 여기서 목수로 해석된 헬라어 ‘테크톤’은 ‘집이나 배를 설계하고 짓는 사람’이란 의미로도 쓰였다. 예수를 일감을 수주해 처리하는 일종의 ‘기업가’로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캐나다 리젠트칼리지 명예교수이자 일터변혁연구소(IMT) 대표인 폴 스티븐스는 이런 ‘노동 친화적’인 예수의 환경과 행적에 주목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일터 신학’ 전문가인 그는 신학자일 뿐 아니라 캐나다의 대형교회 목사로도 활동한 경험이 있다. 목수와 사업가, 상담가 등 교회 밖 직업도 두루 거친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30여년 간 이들 직업을 경험하며 다양한 ‘작업복’을 입은 스티븐스는 예수를 “작업복을 입은 왕”으로 바라보며 이 책을 썼다. 예수 역시 “노동자 계급인 블루칼라 집안에서 태어나 가족을 부양키 위해 30세까지 기술자로 살았다”는 이유다. 예수의 언어에 노동 관련 내용이 적잖은 것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성경이 기록한 예수의 공적 출현 횟수는 132회인데 이중 122회가 일터에서 일어났다. 예수의 비유 52편 가운데 일터 속 맥락이 담긴 이야기는 45편에 달한다. 열두 제자 역시 성직자가 아닌 노동자 가운데서 세웠다.
책은 일터 신학에 하나님 나라를 접목한 신학적 내용을 주로 다룬다. 예수는 복음서에서 교회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훨씬 더 많이 논했으며 “영혼만이 아닌 창조세계 구원”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전했다. “세상의 모든 게 하나님 주권 영역 안에 있으며 인간의 모든 선한 일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는 저자의 논리도 여기서 나왔다. 이럴 때 일터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영역 중 하나”가 된다.
‘일터를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설파한 예수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국내외 일터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에게 ‘성속이원론’(聖俗二元論)은 ‘전 세계 교회에서 가장 해로운 이단’ 그 자체다. “예수 제자로 사는 삶에 있어 시간제란 옵션은 없다”며 평신도를 ‘2등급 제자’로 보는 시선도 경계한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성속이원론의 종말을 가져왔다”며 “그리스도인이 부름을 받지 못할 만큼 타락한 분야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부를 창조하고 가난을 경감하며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개선하는 일, 다가오는 하나님의 샬롬에 저항하는 권세와 싸우는 일은 모두 하나님의 일”이라며 “일터는 그리스도인에게 일종의 영적 성장과 훈련의 장소”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해선 ‘정직’ ’투명함’ ‘성실함’ ‘온전함’ 등의 기독교적 미덕이 요구된다. 그렇지만 불의한 권력 구도와 제도, 비윤리적 행태가 판치는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이런 미덕이 효력을 발휘할까. 저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를 이에 대한 답으로 내놓는다. 모든 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일터 등지에서 직면하는 저항의 권세와 씨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이다.
학자나 목사가 아닌 작업복 입은 노동자의 관점에서 나온 ‘생계형 신학’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목수 시절 “값비싼 캘리포니아산 삼나무 목재를 톱으로 자르기 전 많이 기도했다… 목사로 살 때보다 더 많이 기도했던 것 같다”는 솔직한 고백도 인상적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는 ‘일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전하는 격려도 자못 감명 깊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일이 존엄성과 의미를 갖는 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 속으로 들어가고 그 일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그분 안에서 일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