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개마고원이 있다면 남에는 진안고원이 있다. ‘호남의 지붕’으로 불리는 진안고원은 해발 300~1100m에 드넓게 펼쳐진 고원지대다. 이곳의 마을길, 숲길, 물길을 이은 길이 ‘진안고원길’이다. 총길이 210㎞, 15구간의 도보 문화 여행길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길이 아니라 사람 왕래가 끊겼던 묵은 길, 잊혔던 옛길, 땔감과 약초 구하러 다니던 산길을 되살려냈다. 50여 개 고개와 100여 개 마을을 지나며 자연과 사람 그리고 마음을 이어준다. 걷다 보면 진안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정겨운 이야기를 두루 만난다.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일궈온 산골 농촌의 풍경이 정겹다.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물든다.
진안고원길 가운데 7구간 ‘황금폭포 하늘길’은 진안의 최고봉인 운장산 남쪽 산줄기에 감싸여 있는 부귀면에서 정천면으로 넘어간다. 부귀면사무소→부귀교→대동마을→황금쉼터→황금폭포→가치마을→신기마을→방각마을→심원재→마조마을을 지나며 진안의 산골마을과 하천, 폭포, 고개를 만난다. 17㎞에 6시간가량 소요된다.
이 길의 하이라이트는 ‘황금폭포’다. 부귀면 황금리에 있다. 황금리는 운장산 기슭 쇠바탕에서 황금이 나왔다고 해 얻은 지명이다. 폭포는 하수항 마을에서 직절골로 1.1㎞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먼저 들어가는 길 왼쪽에 ‘황금동굴’이 있다. 2020년 부귀면 주민자치위원회가 이 일대에서 발견한 황금동굴 10여 개 가운데 하나다. 작은 나무 팻말이 서 있다. 동굴은 일제강점기 시대 인력으로 뚫어진 것으로 보인다. 폭 3m, 높이 2m, 깊이 15~20m 규모다. 6·25전쟁 때는 마을 사람들의 은신처로 이용됐다고 한다.
길 끝에 닿으면 예상보다 높고 웅장한 폭포가 기다린다. 그리 깊지 않은 골짜기에 33m에 이르는 높이에서 물이 떨어진다. 폭포 상단을 올려다보면 물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까지 시원하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폭포 상단에 있는 전망대에 서면 황금폭포로 들어오는 골짜기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길을 이어가면 가치마을을 지나 황금리로 내려선다. 일대 논에서는 가을 햇살 아래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황금천을 따라 걸으면 황금저수지에 닿는다. 인근 심원재는 운장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옥녀봉으로 솟아오르기 전에 만들어진 고개로, 정천면과 부귀면의 경계다. 옥녀봉에는 진안 8대 명당 중 제1대 명당인 ‘옥녀창가’(玉女唱歌)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을 노래재라 했고, 한자로 가치(歌峙)마을이라 했단다.
또 하나의 황금빛 물결은 진안군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다. 면적 5만9000㎡에 달하는 진안군농업기술센터 과학영농 실증시험포는 봄에는 청보리,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코스모스 등 계절에 맞게 작물을 심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가을철 주인공은 황화코스모스다. 꽃색이 선명하면서 다양할 뿐 아니라 꽃피는 기간도 길다. 해 질 무렵 진안 마이산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소개된 뒤 멋진 풍경을 담으려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황화코스모스는 코스모스의 노란색 변종으로 오인되지만 일반적인 코스모스와는 종(種)이 다르다고 한다. 꽃 색깔이 황색이어서 ‘황금 코스모스’ ‘유황 코스모스’ ‘오렌지 코스모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꽃말은 ‘야생적인 아름다움, 어린 사랑의 마음’이다. 원산지는 멕시코로 해발 1600m 이하의 지역에 자생한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대 초에 도입된 코스모스보다 늦게 1940년쯤 화단용 꽃으로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령면 원동촌마을에 있는 동촌양곡정미소도 진안의 SNS 숨은 명소다. 마을 입구 수호신처럼 서 있는 이끼 낀 고목 팽나무와 다정하게 어울리는 허름한 양철 건물이다. 빛바랜 낡은 초록색 양철 지붕에 비바람을 막을 양철벽과 잡초가 자라는 지붕 곁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이끼 낀 고목 팽나무는 50여 년 전으로 돌아가는 추억의 감성을 선물한다. 낡은 양철문 위에는 희미한 글씨로 명찰이 붙어 있다.
여행메모
하수항마을 좁은 길 끝 황금폭포
9월 가을꽃·10월 홍삼 축제 개최
하수항마을 좁은 길 끝 황금폭포
9월 가을꽃·10월 홍삼 축제 개최
전북 진안의 황금폭포는 부귀면과 정천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부귀면에서는 메타세쿼이아길을 따라 수항리 중수항마을까지 국가지원지방도 49호선을 따라오다가 폭포골로 진입한다. 정천면에서 갈 때에는 진안읍에서 지방도 795호선을 따라 이동해 월평리에서 국가지원지방도 49호선을 타고 좌회전해 직진하다가 새터마을에서 두남교를 건너면 중수항마을에 이른다. 좁은 마을길을 따라 폭포 앞까지 갈 수 있다.
길 끝에 차량 6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있다. 왼쪽 산길로 올라가면 폭포 위 고원길로 이어진다.
진안군농업기술센터는 '진안읍 진무로 702-30'에 있다. 주변에 마이산의 반영 사진을 담는 반월제도 있다. 마이산 기슭에 자리 잡은 원동촌마을 주소는 '마령면 원동촌길 13-1'이다. 익산장수고속도로 진안나들목에서 가깝다.
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인근 진안마이산휴게소에도 들러보자. 크게 힘들이지 않고 마이산을 볼 수 있다. 마이산 조형물 옆 정자 마이정도 이채롭다.
진안의 대표 농특산물은 인삼과 홍삼이다. 평균고도가 400m에 이르는 산간고랭지인 진안은 인삼이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질 좋은 진안인삼은 홍삼으로 가공된다. 진안 홍삼 생산량은 전국 생산량의 35%를 차지할 정도다. '2024 진안홍삼축제'가 다음 달 3~6일 마이산 북부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앞서 '제1회 진안고원 마이산 가을꽃 축제'가 오는 28~29일 진안군농업기술센터 일원에서 개최된다.
진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