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의 추석 연휴 전 출범이 사실상 불발됐다. 12일까지 협의체 참여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의사 단체는 나오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표성 있는 의료계 단체가 빠진 협의체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을 의제로 올리는 것을 두고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회의 석상에서 맞부딪히는 등 총체적 난맥상도 드러냈다.
한 대표는 협의체 출범이 지연되는 현 상황의 책임을 민주당에 돌렸다. 한 대표는 국회에서 주재한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의협이 꼭 돌아와야 한다’거나 하는 전제조건을 걸었을 때 협의체가 출발도 못하고 흐지부지될 것이란 걸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이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의 합류를 협의체 참여 전제조건으로 내건 점을 비판한 것이다.
한 대표는 이어 “협의체를 통해 이 상황을 해결하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드리는 것을 원하신다면 특정 의료단체의 참여 같은 조건을 걸지 말고 일단 협의체 출발에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고 야당의 협조를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15개 의료계 단체에 공문을 보내고, 물밑 접촉을 통해 협의체 참여를 설득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 지도부 인사는 통화에서 “참여에 긍정적인 단체가 일부 있지만 ‘응급실 근무 블랙리스트’ 등 의료계 내 부정적인 여론과 압박 때문에 공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참여에 긍정적인 단체라도 일단 탑승시켜 협의체를 출발시키자는 게 국민의힘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의협·대전협 등이 참여하지 않으면 실효적인 논의도 어렵다고 말한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현재까지 대표성 있는 의료단체의 참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의료계 압박 수단으로 민주당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진 의장은 의료계 설득을 위한 대통령 사과와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을 거듭 요구했다.
여야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당정 간 의견차도 돌출했다. 한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고위당정협의회 비공개 회의에서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조정 문제를 협의체에 상정할지를 두고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한 총리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대입 수사모집 등이 이미 시작된 상황을 고려하면 혼선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한 대표는 “재조정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상황이 한가한가”라고 반박했고, 한 총리 역시 물러서지 않고 “지금 상황은 정부가 관리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최근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전공의 집단사직 문제와 관련해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점을 두고도 두 사람이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는 정부의 보다 유연한 대처를 요청했지만, 한 총리는 응급실 블랙리스트 등을 언급하며 ‘엄중 대응’ 방침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현수 최승욱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