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영혼의 양식, 커피 향이 가득한 북카페 속으로

입력 2024-09-21 03:00

기이하기까지 했던 9월 폭염이 마침내 꺾였다. 아침저녁 시원하고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독서의 계절’ 가을이 마침내 당도했음을 알려준다. 책을 가까이 않던 이들조차 책장을 넘기고 싶게 만드는 시즌이다. ‘책의 사람들’이라 불리는 크리스천이 기독교 문화가 스민 곳에서 양서를 읽고 사색한다면 영혼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으로 충만할 것이다. 주변에서 하나님의 숨결과 함께 책을 읽기 좋은 공간을 찾아본다.

민중신학의 둥지에서 책을 읽다

한국교회생태계연구네트워크 대표인 한경균 목사가 최근 서울 강북구 한신대 캠퍼스 내 카페 ‘고운울림’에서 책을 읽고 있다.

목회자 중심의 독서 모임인 한국교회생태계연구네트워크(교생연)의 대표를 맡은 한경균 목사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 많을 때는 세 번씩 이곳을 찾는다. 바로 서울 강북구 한신대 캠퍼스 장공기념관 지하 거대한 인공연못의 끝에 자리 잡은 카페 ‘고운울림’이다. 최근 한 목사를 만나러 이곳을 찾았을 때 그는 미리 도착해 책을 읽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책은 2022년 별세한 1세대 민중신학자 김용복 목사의 유고집 ‘한국 기독교 사상사의 전개’. 한 목사는 이 책의 의미를 자세하게 들려주면서 ‘힐링의 공간’이자 ‘독서 스팟’인 이 카페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았다.

“올 때마다 서너 시간 머무는 것 같아요. 연못의 분수나 인공폭포가 선사하는 분위기가 대단한 곳이에요.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디톡스(해독)되는 기분이에요. 이 카페에 오면 커피 대신 차를 주문해요. 왠지 모르게 이런 곳에선 커피보다는 차가 어울리는 것 같거든요(웃음).”

한 목사의 소개처럼 ‘고운울림’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카페다. 연못과 분수, 폭포 덕분에 계곡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지하에 있지만 야외와 연결돼 개방성을 띤다는 것도 특징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속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 외부로 열려 있지만 안으로 닫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아늑한 공간이다.

조용하면서도 얼마쯤 활기가 느껴지는 캠퍼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이 지닌 강점이다. 한 목사는 “가을이면 학교 뒷산에 단풍이 곱게 드는데 독서를 하다가 자연을 느끼고 싶을 땐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고 설명했다.

카페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된다. 토요일은 격주로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손님을 받고 일요일엔 문을 닫는다. 카페 구석 서가에는 평화나 생명을 주제로 내건 책들이 꽂혀 있고 손님들을 위한 무릎담요도 비치돼 있다. 내부는 6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인데 외부 테라스에도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돼 있다.

한신대는 민중신학의 본산으로 통하는 학교다. 그런 만큼 카페에 있으면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김재준 문익환 안병무 서남동 같은 신학자들의 뜻도 되새겨보게 된다. 한 목사는 “이곳에서 책을 읽으면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선배 신학자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며 “그들이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를 위해 헌신한 장면들도 떠올려보곤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 숨결과 책 있는 ‘동네 쉼터’

혼자 조용히 책을 읽을 만한 동네 책방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특히 크리스천이 운영하는 공간엔 하나님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어 머무는 동안 마음이 편해진다. 진열된 서가엔 각 동네 책방들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만큼 책을 살피는 재미도 쏠쏠하다.

경기도 화성 동탄의 크리스천 동네 서점 ‘오래책방’ 모습.

경기도 화성 동탄의 아파트촌 인근 ‘오래책방’은 크리스천이자 작가인 이정오(49) 대표가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예능프로그램 방송작가로 살던 이 대표는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동안 책을 탐독하며 경험한 삶의 변화를 나누려고 이곳을 시작했다고 한다. 글쓰기와 독서모임이 이뤄지는 공간과 책 읽는 장소는 커튼 하나로 구분돼 있다.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책을 읽으라는 배려가 담겼다.

이곳엔 책과 커피를 팔지만 이 대표는 자기 책을 가져와 읽다가 가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 가장 흐뭇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손님이 먼저 말을 걸기 전엔 최대한 거리 두기를 한다. 이 대표는 “기독교 서적을 취급하는 책방인 걸 알고 먼 곳에서도 오신 분도 있었다”며 “동네마다 편안히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래책방의 40%가량은 기독교 서적이다.

경기도 화성 동탄역 인근 아파트 상가의 ‘모퉁이책방’ 내부.

동탄역에서 멀지 않은 주상복합 아파트 상가에 있는 ‘모퉁이책방’은 교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한다. 같은 건물 한 층 위에는 이금순(58) 대표가 다니는 교회도 있다. 기자가 방문한 최근 책방엔 교회 성도가 앉아 성경 필사를 하고 있었다. 평일엔 동네 주민들이 책을 읽으며 쉼을 갖지만 주일엔 성도들이 쉬는 장소로 변모한다.

이 대표는 자녀들이 어릴 적 한 대형 교회의 북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남편과 “하나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언젠가 만들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한다. 그렇게 20여년이 흘러 공간을 꾸렸다. 책방에서는 신앙서적과 독립출판사의 책이 주로 판매된다. 이 대표는 “대형 서점과 대형 카페에 비하면 약자인 우리처럼 그들이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책 읽는 시간을 못 내는 이들을 위해 휴대전화를 한두 시간씩 상자에 담아놓고 책에 몰입하는 ‘로그오프’와 소설이 원작이 된 영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신앙 서적 꽂힌 카운터… 홍대 기독 북카페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인근 ‘책방 죄책감’의 창가석.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인근의 ‘책방 죄책감’은 홍진일(48) 대표가 3년 전부터 지금껏 지켜오고 있다. 해결되지 않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가게 이름에 담겼다. 카운터 앞에는 그가 고른 신앙 서적 여러 권이 꽂혀 있다.

이 공간은 책 읽는 장소뿐 아니라 독서모임이나 북토크, 인문학 강연장으로도 사용된다. 책 읽는 자리는 모두 창가석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곳에 앉으면 주인과 눈이 마주칠 일이 없다. 홍 대표가 앉아있는 카운터는 성인 키 정도로 높아 일부러 안쪽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서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홍 대표는 “우연히 책방에 온 손님이 제가 고른 책을 통해 몰랐던 분야에 대해 관심뿐 아니라 다른 시각이나 인식을 가질 때 가장 기쁘다”며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변화하진 않겠지만, 각자의 우물 안에 던져진 돌멩이 같은 존재가 되길 소망하며 많은 이들이 이곳에 와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일대는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 성지다. 출판사 신간과 구간, 작가 초청 행사 등을 두루 접하는 동시에 음료도 즐길 수 있어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곳이 적잖다.

서울 마포구 북카페 ‘IVP 북카페 산책 x 일용할 커피’ 모습.

홍대입구역 인근에 사옥을 둔 기독 출판사 IVP도 이런 성격의 북카페를 운영한다. 사옥 1층에 자리한 ‘IVP 북카페 산책 x 일용할 커피’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벽면 서가에는 그간 한국교회에서 널리 사랑받았던 IVP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만날 수 있다. 출판사 신간도 여기서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다.

IVP 출간 도서와 관련한 북클럽과 북토크 등 행사도 이곳에서 열린다. 현재는 조직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와 라이언 매커널리린츠가 지은 IVP 번역서 ‘하나님의 집’을 같이 읽는 북클럽이 매주 목요일에 열린다.

양질의 책과 위치뿐 아니라 커피 맛도 좋다. 이곳에서 커피를 내리며 IVP 신간 도서도 안내하는 강유겸 일용할커피 대표는 한국수제커피협회장이다. IVP 관계자는 “‘IVP 북카페 산책 x 일용할 커피’는 편안한 휴식 공간에서 수준 높은 맛과 향을 지닌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며 “독서의 계절을 맞아 이곳에서 신앙 서적과 함께 따뜻한 커피를 즐기며 깊은 사색에 빠져보시길 권한다”고 말했다.

신은정 박지훈 양민경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