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건 교과서와 고전이 갖는 숙명이 있습니다. 책이 얼마나 수려하고 깊은지 경험할 여유가 없습니다.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역설적인 운명에 속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웨인 그루뎀의 ‘조직신학’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받은 조직신학 교과서 중 하나이자 고전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책은 신학을 조직적으로 전개합니다. ‘성경 교리에 대한 서론’이란 짧은 부제목 속에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책은 ‘서론’으로 윤곽을 보여주되 과도하게 구체적 논의는 생략합니다. 또 자신의 해석이 답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란 거대 산맥을 탐험하는 수십 가지 올레길 중 하나라고 겸손히 말합니다. 이와 함께 책은 ‘성경 교리’를 다룹니다. 성경을 기반으로 교리를 조직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은 진귀합니다. 성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가장 먼저 짚고 그 토대 위에 주요 교리를 쌓아 나갑니다.
말씀 속 복잡다단한 진리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이는 책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신학이 머리에서 멈추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예배와 순종과 사랑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함께 교회가 진리 안에서 일치를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신학 세계라는 지도에 이 책을 놓아야 한다면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처음부터 저자는 자신이 어떤 배경에서 자기 신학을 형성했는지 솔직히 말합니다. 그렇다고 자신과 동의하는 사람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책 말미의 인명 색인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많은 학자와 대화를 시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초판 이후 등장한 새로운 논의에 대한 저자의 반응도 흥미롭습니다. 열린 신학이나 진화론에 관한 쟁점, 형벌 대속 이론이나 새 관점 논점을 다루는 부분은 유익합니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과 현대 예배 음악,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도 깊이 파고듭니다.
책은 기독교 신학에 관심 갖는 모두에게 정갈하고 풍성하게 차려낸 거대한 밥상과 같습니다. 저자는 독자가 편하게 이 모든 내용을 소화할 수는 없다며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기도로 그분의 돕는 손길을 간구해야 합니다. 둘째는 ‘겸손’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단 한 순간도 오만할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선용하자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찬양’하자고 합니다. 조직신학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전진해야 하고 그분을 향한 찬송으로 귀결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