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첫 TV토론에서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현안을 놓고 100분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난타전을 벌였다. 대선 후보 TV토론이 처음인 해리스가 ‘토론 베테랑’ 트럼프를 도발하며 평정심을 잃게 했다는 분석이 많다. 토론 직후 양측 모두 승리를 선언했지만, 해리스가 판정승을 거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해리스는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열린 토론에서 트럼프를 “국가안보 범죄와 경제 범죄, 선거 개입으로 기소된 누군가”로 지칭하며 “성폭력에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의 과거 유행어 “당신 해고야(You’re fired)”를 가져와 “(당신은) 지난 대선에서 8100만명으로부터 해고당했다(fired)”고 꼬집었다. 해리스는 또 “당신과 함께 일했던 많은 군 지도자들이 나에게 당신이 수치라고 말한다”며 트럼프를 자극했다.
트럼프는 초반에는 차분하게 해리스의 발언을 경청했지만, 여성의 재생산권 문제에 대한 해리스의 공세가 이어지자 흥분한 듯 여러 차례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자의 발언을 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지난 6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TV토론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며 미소를 짓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분명히 화가 나 있었다”며 “그의 참모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CNN은 “해리스가 첫 번째이자 어쩌면 유일할 수 있는 1시45분간 토론에서 거의 모든 시간 동안 트럼프에게 미끼를 던졌고, 트럼프는 미끼를 다 물었다”고 평가했다.
해리스는 마무리 발언에서 “나는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바로 지금 미국 국민에게 투자하고, 앞으로 10년 20년간 우리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그녀(해리스)는 이것저것 모든 멋진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왜 그녀는 지난 3년반 동안 그것을 하지 않았나”고 따지며 바이든과 해리스를 가리켜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과 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CNN 여론조사에선 토론을 시청한 유권자 중 해리스가 더 잘했다는 응답이 63%로 트럼프가 더 잘했다는 의견(37%)을 크게 앞섰다. 토론 전 ‘어느 후보가 더 잘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을 때는 두 후보 모두 50%로 동률이었는데, 토론 직후엔 해리스의 손을 들어준 유권자가 더 늘어난 것이다. 지난 6월 바이든과 트럼프 토론 때는 트럼프가 67%를 얻어 33%에 그친 바이든을 압도했었다. 선거예측업체 실버불레틴의 네이트 실버는 “해리스는 자신이 원하던 토론을 얻었다”며 “해리스가 이날 밤 승리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논평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