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산운용업계의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열기가 여전히 뜨겁지만 테마형 ETF 위주의 ‘베끼기 관행’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 등에서 독창적인 상품에 한해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신청서를 낸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한국거래소는 10일 “삼성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한화자산운용·흥국자산운용이 발행한 ETF 8종목을 신규 상장한다”고 밝혔다. 신규 상장되는 ETF는 삼성운용의 ‘KODEX 미국 테크 1조 달러 기업포커스’와 미래운용의 ‘TIGER 글로벌 AI 인프라 액티브’ 등 이미 상장돼 있는 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ETF 시장은 지난해 말 순자산 120조원에서 6개월 만에 150조원을 돌파한 뒤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813개였던 ETF 수도 890개로 늘었다. 매주 2개의 상품이 새로 상장된 셈이다. 반면 ETF 시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5일 자산운용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자산운용업계는 ETF 베끼기, 수수료 인하 등 단기적 수익추구에 치중하느라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한국거래소가 지난 2월 독창적인 ETF를 개발한 운용사에 6개월간 배타적 사용권을 주는 ‘신상품 보호제도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신청서를 낸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금융투자협회에서도 펀드와 관련한 신상품 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신청이 들어오지 않아 수년째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투협의 신상품 배타적 사용권 법규를 보면 ‘자체 개발한 지수 등 새로운 비교 평가 지표를 활용해 개발한 상품 또는 서비스인지 여부’ ‘유사한 기존 상품과 비교해 인적·물적 자원의 투입 정도’ 등이 평가 기준으로 제시돼 있다. 이 기준에 비춰 봤을 때 ‘국내 첫’ 타이틀을 단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의 ‘KoAct 미국뇌질환치료제액티브’나 이날 신규 상장된 한화운용의 ‘PLUS 국공채머니마켓액티브’ ETF도 배타적 사용권을 받기 부족하다는 게 거래소나 협회 측 설명이다.
업계에선 국내 ETF 시장이 양적 성장에 치중돼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테마형 상품들이 있어 당분간은 현재와 같은 상품 출시 경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출시되고 있는 ETF 상품은 ‘짜깁기’ 느낌이 강하다 보니 배타적 사용권 기준에 부합하기 어렵다”며 “보호 제도 신청 과정도 복잡해 독창적인 상품을 만들려는 곳도 없다”고 말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