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도산의 뜻 성도들이 배웠으면”

입력 2024-09-14 03:05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장이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도산안창호기념관 전시실 내 안창호(가운데) 선생 사진 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 선생 옆은 독립운동가 김구(맨 왼쪽)와 이탁 선생이다.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 내외의 묘소가 있는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는 선생의 동상과 말씀비뿐 아니라 일대기와 업적 등이 적힌 패널이 곳곳에 놓여있다. ‘애기애타’(愛己愛他·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라) 등 도산의 상징적 문구를 기록한 패널은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김재실)가 전시한 것이다. 공원 내 도산안창호기념관 관람객보다 행락객이 10배 이상 더 많기에 이들에게 자연스레 도산의 정신을 전하려는 의도로 설치했다. 최근 제79회 광복절 경축행사로 ‘장난감으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등을 열어 시민에게 친숙하게 다가서는 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 사업을 이끄는 김재실(79)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장을 지난 2일 기념관에서 만나 그의 삶과 신앙, 도산과의 인연을 들었다.

참배나무의 교훈

김재실 회장은 KDB산업은행(산은) 전신인 한국산업은행을 거쳐 산은캐피탈, 성신양회 사장 등을 거친 금융인이자 기업인이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그는 산은 재직 중 숭실대 성균관대 등에서 10여년간 경제, 수학 등을 강의한 교육인이기도 하다. 퇴직 후엔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상임고문을 지내며 언론계에도 몸담았다.

언뜻 보면 도산과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력이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엔 어떻게 합류했을까. 그는 “일단 도산 선생은 후손이 미국에 있고 고향도 평안도라 지연을 찾기 어렵다”며 “후손이나 동향 사람 중심으로 구성된 일반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이어 “내 경우는 대학생 시절부터 도산 선생이 세운 민족운동단체인 흥사단 활동을 했던 게 인연이 돼 지금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대학 1학년이던 1963년 흥사단에 입단했다. 당시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열린 ‘도산 선생 25주기 추모식’에 우연히 참석한 게 계기다. 행사장엔 도산의 말이 플래카드에 적혀 있었는데 이 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린다’란 글귀였다. “독립할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독립국의 열매가 있고, 노예 될 만한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망국의 열매가 있다”는 말을 전하려 도산이 앞서 비유로 든 문장이다. 그는 “내가 참배나무면 참배를 결실하고 돌배나무처럼 살면 돌배를 맺는다는 이 문장이 내겐 진리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후 흥사단에서 대학생 아카데미를 조직한 김 회장은 이를 전국 모임으로 확대했다. 대학생을 비롯해 고등학생까지 대상을 넓힌 아카데미는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안병욱 전 숭실대 교수가 지도교수를 맡았다. 김 회장은 안 교수를 모시고 전국의 강연장을 돌며 도산의 사상과 위업을 전하는 일에 힘을 보탰다.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내 도산안창호기념관 입구. 도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당시 흥사단 건물이 을지로 산은 본부 맞은편에 있어 입사 이후에도 흥사단 활동을 지속했다. 매일 퇴근 후 고등학생에게 강연했고 흥사단 시민 공개 교양 강연인 ‘금요개척자강좌’와 주말 집회엔 안 교수를 비롯해 ‘철학 삼총사’로 불린 김태길(서울대) 김형석(연세대) 교수, 함석헌 선생 등 인기 강사 초빙에 힘썼다. 평양에서 직접 도산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은 김형석 교수는 지금도 기념사업회와 협력해 인문학 강연을 제공하고 있다. “이대위 목사나 백낙준 선생 등 도산 선생과 생전 함께한 분들을 흥사단에서 뵈면서 많이 배웠다”는 김 회장은 “성경 다음으로 도산 선생의 어록을 즐겨 읽다 보니 이젠 거진 외울 정도”라며 웃었다.

도산은 참 그리스도인… 통합 리더십 계승해야

흥사단에서 1970년대 도산 묘소 이장과 공원 조성, 90년대 도산안창호기념관 건립 등 굵직한 행사를 함께한 그는 2017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현재는 3번째 임기를 수행 중이다. 매주 목요일 2만여명에게 이메일 등으로 도산의 어록을 전하는 ‘도산의 희망편지’는 김 회장이 주력하는 사업 중 하나다. 그는 “간략한 내용에도 울림이 있다는 반응이 적잖다”며 “앞으로 500회를 넘기면 소책자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학생 시절 김 회장은 흥사단 활동과 함께 서빙고역 인근 천막에서 야학 봉사를 하다 기독교에 귀의했다. 교회의 도움을 받는 야학이라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국어·수학 등 교과목과 함께 성경 내용을 요약해 가르치는 시간도 맡았다. 그러던 중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를 숙고하다 신앙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뒤편의 동숭교회를 시작으로 영락교회를 거쳐 지금은 소망교회 원로장로로 섬기고 있다”며 “서울에 아파트촌이 늘면서 교회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목사인 선배와 78년 서초동의 한 아파트 상가에 개척교회도 세웠다”고 했다.

김 회장은 “기독교적 사랑 가운데 부단히 자기 수양을 한 도산 선생은 참 그리스도인”이라며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며 철저히 거짓을 멀리하라는 도산의 뜻을 한국교회 성도가 배워야 한다”고 했다. 또 “반대편도 포용해 1919년 통합임시정부를 출범한 도산의 ‘통합 리더십’도 현 한국교회와 사회에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도산 선생의 기독교 정신을 설명하던 그는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룰 날이 있다”는 문구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려면 참 진리와 정의,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며 “교파와 개교회를 넘어 국가와 민족을 품는 신앙을 강조한 도산처럼 우리도 폭이 넓은 신앙을 추구하는 기독교인이 되자”고 당부했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