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25년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 국민 지지 얻기 힘들다

입력 2024-09-11 00:31
박평재 고대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과 채희복 충북대병원·의대 비대위원장, 김충효 의과대학·강원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왼쪽부터)이 9일 충북대 의대 본관 앞에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를 폐기하고 의료 대란의 원인 제공자를 중징계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정부와 정치권이 연일 의료계에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촉구하고 있으나 의료계는 전제조건을 내걸며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의료계가 내건 조건이 ‘2025년 의대 증원 백지화’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2025년 입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의대 정원 재조정 요구는 입시생과 학부모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10일에도 의료계에 협의체 참여를 촉구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여당과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등에 대해 원점에서 논의 가능하다고 밝힌 만큼 의료계도 협의체에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다만 그는 “2025년 정원 재조정 문제는 사실상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증원 원점 재검토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의대 교수들은 삭발까지 하며 “2025년 의대 증원을 취소해야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돌아오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2025년 의대 증원 취소를 주장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증원 취소는 수험생과 학부모님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의료계 주장과 달리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는 합리적이지 않다. 재외국민·외국인 특별전형 원서 접수는 지난 7월 초 끝났고 수시 원서 접수도 이미 진행 중이다. 9일 수시 원서 접수를 시작한 31개 의대에는 당일에만 모집인원보다 많은 지원자가 몰렸는데 이런 상황에서 의대 증원 변경을 요구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의료계 일각에선 1990년대 정부가 한의대 모집 정원을 감축한 예를 들며 이번 의대 증원도 백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정원을 줄인 것은 원서 접수 전으로, 올해와는 상황이 다르다. 과거의 어떤 경우도 2025년 의대 증원 백지화를 합리화시킬 수 있는 예는 없다.

응급실 의사가 부족해 위급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의료계가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을 펼칠 기회로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의대 증원이 의료개혁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의대 증원 백지화는 공허한 주장이라고 여긴다. 현실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2025년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에만 매달리면 국민의 지지를 얻기는 더 힘들어진다. 협의체에 적극 참여해 2026년 의대 정원 논의부터 중장기적인 의료개혁 과제까지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의료계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얻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