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광교회(이상대 목사)에 다니는 박무형(61) 권사가 보내온 글엔 자신의 유년기 신앙생활을 정리한 내용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강원도 홍천. “서양 귀신 예수만 빼고 모든 신 앞에서 절을 하던” 종갓집 손녀로 태어난 그에게 교회에 가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그가 교회에 처음 나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윗동네에 살던 작은어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한 살 터울 사촌 언니를 따라 여름성경학교에 출석했다. 풍금 반주에 맞춰 율동을 하고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고 감자와 옥수수로 허기를 달래고 개울에서 물놀이를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손녀딸이 교회에 나갔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서 사달이 났다. 할아버지는 엄포를 놓았다. “교회에 갔다는 얘기가 한 번만 더 들리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겠다.” 하지만 박 권사는 할아버지 몰래 작은어머니 집에 갈 때마다 교회에 갔다.
중학교 2학년 때 펑펑 눈이 쏟아지던 겨울날이었다. 시간은 새벽 4시. 작은어머니가 새벽기도를 가자고 했다.
“눈이 저렇게 많이 오는데 어떻게 가요?”
“그깟 눈이 대수여? 너도 얼른 일어나 같이 가자.”
작은어머니를 따라간 곳은 동네에 있던 작은 초가집이었다. 작은어머니가 출석하던 서광교회가 기도 처소로 만든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박 권사는 작은어머니와 함께 기도를 드렸다. 방에는 성도들이 나직하게 기도드리는 소리가 창밖에 내리는 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신앙생활의 첫사랑, 고향교회
추석 연휴를 앞둔 13일 박 권사와 함께 찾아간 이 기도 처소는 완전히 바뀐 상태였다. 그곳은 현재 청량교회(옥상주 목사)라는 이름을 내건 아름다운 예배당이 세워져 있었다. 교회에 도착한 박 권사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의 고향에 온 것 같다고,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이라고.
청량교회는 박 권사가 어린 시절 작은어머니 손을 잡고 다니곤 하던 서광교회가 1983년 분립 개척한 교회였다. 2층짜리 건물로 1층에는 성도들이 교제할 수 있는 식당이, 2층엔 아담한 예배당이 있었는데 식당에서 박 권사를 기다리고 있던 이는 여전히 이 동네에 사는 그의 작은어머니 김순남(83) 권사였다. 그는 출석 성도가 40명쯤 되는 이 교회 유일한 ‘원년 멤버’였다.
“교인들이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부터 교회를 위해 많이 헌신했어요. 10년 전만 해도 성도가 많았는데 하나둘씩 시골을 떠났고 그렇게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계속 줄었죠. 다행히 지난해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면서 성도가 2배 가까이 늘었어요. 청량교회에 다니면서 목사님이 10번 바뀌었는데 지금 목사님이 최고인 것 같아요(웃음).”
박 권사로서는 청량교회를 방문한 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박 권사와 비슷한 연령대의 중년들이 그렇듯 그는 어른이 되면서 서울로 떠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5남매를 키웠다. 신앙생활이 얼마간 부침을 겪은 적도 있지만 현재 출석하는 서광교회에 다니면서 다시 신앙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다. 경기도 양주에 사는 박 권사는 이날 국민일보 취재진과 청량교회로 향하는 내내 고향교회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띠는지, 교회에서 쌓은 추억이 얼마나 큰지 들려주었다.
“제가 살던 동네엔 교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작은어머니 댁에 놀러 가 교회에 가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어요. 교회가 있는 동네에 사는 게 정말 큰 복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서울에 살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은 기간도 있어요. 방황을 많이 했죠. 어쩌면 제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간 것은 어린 시절 고향교회의 경험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해요. 그 시절 마음에 심었던 신앙의 씨앗이 고구마 줄기처럼 자라 마음을 다잡게 했던 거죠.”
박 권사는 이 교회 옥상주 담임목사의 안내를 받으며 교회 곳곳을 둘러봤다. 옥 목사는 서울에서 목회하다가 지난해 11월 연고도 없던 홍천에 내려온 40대 목회자였다. 그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추석 연휴에 고향교회에 꼭 방문해볼 것을 당부했다.
“고향교회에 가면 시골 교회의 현실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다들 짐작하는 것처럼 시골 교회는 어르신이 대부분이에요. 저희 교회도 가장 젊은 성도가 60대거든요. 시골 교회는 도시 교회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향교회에 방문하면 시골 교회와 도시 교회가 공생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될 겁니다. 물론 고향교회의 ‘정서’도 되새길 수 있겠죠.”
농어촌교회는 한국교회의 모판
박 권사의 청량교회 방문은 미래목회포럼(이사장 이상대 목사)이 올해로 20년째 매년 명절을 앞두고 벌이는 고향교회 방문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미래목회포럼은 이 캠페인을 통해 고향교회를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주일예배 드리기, 새벽 예배 참석하기, 헌금하기, 담임목사에게 작은 선물 전달하기, 감사 메시지 전하기….
이상대 목사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대형교회 장로나 권사 상당수는 시골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며 “한국의 도시 교회가 지금처럼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농어촌교회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참한 상황에 놓인 시골 교회들을 돕고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국교회 전체가 살 수 있다”며 “농어촌교회가 죽으면 도시 교회도 죽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목사의 말처럼 농어촌교회 대다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있다. 이촌향도의 흐름에 저출생과 고령화 현상까지 포개지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인 교회가 한두 곳이 아니다.
목회자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동부 지역 농어촌선교센터가 2022년 5월 농어촌교회 221곳 목회자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 사례비가 15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54%에 달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같은 해 11~12월 농어촌교회 목회자 504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농어촌교회에 희망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에 육박하는 48%나 됐으며 응답자의 70%는 출석 성도가 30명 이하라고 답했다.
미래목회포럼 임원들은 이렇듯 열악한 상황에 놓인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경북 영주 베다니교회(박명현 목사)를 방문해 이 지역 목회자들을 격려하는 예배를 드렸다. 영주 지역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 10여명을 불러 위로금도 전달했는데 김주광 우계교회 목사도 그중 하나였다.
김 목사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명절마다 우계교회를 찾는 성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올 추석에서도 그분이 오실 것으로 생각하니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향교회를 찾는 것은 처음 은혜를 받았던 기억을 되새기는 일”이라며 “여전히 과거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향교회를 본다면 누구나 감사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농어촌교회에는 일꾼이 이제 별로 없어요. 일꾼들이 전부 도시로 갔으니까요. 도시 교회들이 해외 선교에 관심을 갖는 만큼 농어촌교회에도 눈길을 줬으면 합니다. 농어촌교회가 바라는 가장 큰 것은 관심이에요.”
홍천=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