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화만 고집하며… “수험생·학부모 이해해줄 것”이라는 의협

입력 2024-09-10 00:12
박평재(왼쪽부터) 고대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과 채희복 충북대병원·의대 비대위원장, 김충효 의과대학·강원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이 9일 충북대 의대 본관 앞에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를 폐기하고 의료 대란의 원인 제공자를 중징계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가 9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대 증원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의협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2년 미루고 필수의료 패키지도 백지화해야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의대 입시 혼선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의료계 주장만 되풀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 내부에선 협의체 논의와 관련한 전권을 전공의에게 줘야 할지를 두고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의협은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2025년을 포함해 모든 증원을 취소하고, 현실적으로 논의가 가능한 2027년 의대 정원부터 투명하고 과학적인 추계 방식으로 논의하자”고 말했다.

이날부터 대입 수시모집 접수가 시작된 만큼 수험생 혼란을 고려해 2025학년도 정원 재논의는 불가하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의협은 “정부는 수험생 혼란을 얘기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증원 취소를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이해해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협은 “의대 증원을 2년 미뤄도 7년 후 차이는 2% 정도에 불과하다”며 “2027년도가 의대 정원 변경을 논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의대 증원뿐 아니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백지화도 요구했다. 필수의료 패키지엔 수가 인상이나 의료 전달체계 개편 등 의료계가 요구해온 정책이 대거 포함됐다. 이는 곧 의료개혁을 추진해온 윤석열정부의 백기 투항을 받아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의협은 “방향성 면에서 정부와 의사들이 공감하는 내용도 있다”면서도 “문제 있는 정책이 많은데, 의료계와 논의 없이 정부가 독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는 내용이나 곧바로 개원가로 나가지 못하도록 ‘진료 면허제’를 도입하는 내용 등을 문제 삼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정책들은 의사들의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반발이 컸다.

이날 의료계에서는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위해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협의체가 구성되려면 의료계에서 대표성을 가진 단체가 단일안을 갖고 나와야 하는데, 실질적인 당사자는 전공의와 의대생”이라며 “의협이 이들에게 대표성을 부여하고 모든 의결 권한 등 전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묵묵부답인 전공의를 논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제안이지만 응급실 문제 등 의료 현안을 풀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의사이긴 하지만 교육생 신분인 만큼 의료계를 대표해 정책 논의를 맡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병원장은 “전공의들은 ‘집단 사직이 아니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단일안을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교수나 전문가를 놔두고 전공의만 들어가 논의한다면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유나 이정헌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