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때 끌려가 23년 강제 노역”… ‘또다른 형제복지원’ 4곳 드러나

입력 2024-09-10 01:32
9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 사건 진실규명 결정’ 기자간담회에서 이영철(가명)씨가 피해 사실을 적은 종이를 보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설에서 갇혀 산 세월만 23년입니다. 시설에서 나올 때 70만원을 주며 조치원역에 내려줬습니다.”

이영철(가명·66)씨가 처음으로 부랑인 수용시설에 강제 수용된 때는 그가 15세이던 1973년 가을이었다. 이씨는 대구역 대합실에 앉아 있다가 “따라오라”는 대구시청 직원들의 말을 듣고 탑차에 실려 ‘대구시립희망원’으로 끌려갔다. 이후 서울시립갱생원, 충남 천성원 등의 시설에 23년간 강제 수용됐다.

‘제2의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37년 만에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 4곳에 수용됐던 13명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충남 천성원, 경기 성혜원 등 4곳에서 경찰·공무원 등에 의한 강제수용, 본인 의사에 반하는 회전문 입소(여러 시설에 돌아가며 강제 수용), 폭행·가혹 행위, 독방 감금, 강제 노역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4개 시설은 부산 형제복지원과 마찬가지로 1981년 구걸행위자보호대책 등 정부 정책을 근거로 운영됐다. 다만 1987년 인권침해 실상이 폭로돼 검찰 수사를 받은 형제복지원과 달리 4개 시설은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고 부랑인을 계속 수용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용자 규모는 서울시립갱생원 1900명, 대구시립희망원 1400명, 충남 천성원 1200명, 경기 성혜원 520명으로 추정된다.

수용자들은 ‘사회 정화’ 명목으로 시설에 연행된 뒤 인권침해를 당했다. 휴일 없이 매일 무급노동을 해야 했고, 다른 수용시설 건축 작업에도 동원됐다. 시설 규칙을 위반했다며 독방에 감금되거나 시설 간부로부터 구타당해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시설 사망자 시신 수백 구가 해부실습용으로 대학병원에 교부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천성원 산하 성지원에서 인근 의대에 보내진 시신 교부 수는 1982년부터 1992년까지 10년간 117구에 달한다”고 밝혔다. 시설에서 출산할 경우 친권 포기를 강요해 당일이나 하루 뒤 신생아를 입양알선기관에 전원 조치한 사실도 확인됐다.

진실규명 대상자 이영철씨는 “입소자들이 죽으면 공동묘지에 매장했는데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시신이 드러나 개들이 뼈를 물고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피해자에게 공식으로 사과하고 실질적인 피해 복구 조치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시설 수용 인권침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다른 집단 수용시설 피해까지 회복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덧붙였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