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형 플랫폼의 독과점 횡포를 방지하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을 포기하고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또 거대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미리 지정해 규제하는 사전 지정제를 철회하고 사후 추정으로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플랫폼 중 독점력을 갖춘 곳을 가려내는 방안을 도입한다. 과잉 규제라는 업계 안팎의 반발을 수용했지만 사후 추정 방식으로는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메프 재발방지 입법방향’을 당정협의회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사전 규제라는 비판을 부른 사전 지정 대신 사후 추정 방식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사후 추정은 ‘지배적 플랫폼’을 지정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지정 시점에서 차이가 있다. 법 위반 행위가 발생한 이후 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론 1개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면서 이용자 수가 1000만명 이상이거나, 3개 이하 회사의 시장 점유율 합계가 85% 이상이고 각 회사의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인 플랫폼이 해당된다. 다만 직간접 매출액이 연 4조원 미만인 회사는 지정에서 제외한다.
규율 분야는 중개, 검색, 동영상, SNS, 운영체제, 광고로 한정한다. 규제 대상이 되는 행위는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 최혜대우 요구로 기존과 동일하다. 다만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의 6% 수준인 현행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의 과징금 상한을 지배적 사업자에 한해 8%까지 높인다. 반경쟁 행위 위반이 명백하고 긴급한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임시중지명령을 도입해 후발 플랫폼 퇴출을 방지한다. 지배적 플랫폼의 입증 책임도 강화한다.
앞서 공정위는 기존 공정거래법이 플랫폼 독과점 폐해를 신속히 규율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지배적 플랫폼’을 미리 지정해 이들의 반칙 행위를 근본적으로 봉쇄하는 플랫폼법 제정에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1월 육성권 전 공정위 사무처장은 “법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국내외 반발이 이어지면서 원점 재검토로 물러선 후 결국 별도 입법을 포기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이날 “(개정 관련 내용은) 이미 관계부처 협의 등을 마쳤으므로 국회와 법안 발의를 신속히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