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의 사상적 뿌리는 문화 마르크시즘… 공산혁명과 직결”

입력 2024-09-11 03:07 수정 2024-09-14 14:50
기독교 시민단체가 주최한 반동성애 집회 현장. 집회 참가자들 사이로 ‘동성애는 죄, 예수에게로 돌아오라’는 내용을 담은 영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국민일보DB

안창호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이 취임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의원들은 지난날 그가 성소수자들을 옹호하는 차별금지법이 공산혁명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을 했는지, 그리고 그런 소신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질의했다.

그러자 후보자는 분명히 그런 우려가 있다고 답변했다. 곤란한 상황을 면피해보려고 말을 돌리곤 하는 이들과 달리, 정직한 후보자의 소신에 찬 답변이 나가자 야당에서는 물론 심지어 여당 일각에서도 근거가 없거나 부족한 논리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동성애와 같은 성소수자와 공산혁명의 관계는 그 내밀한 관계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상식적 지성의 시각에서는 그들의 비판처럼 근거가 약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인권위원장의 표현이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 되레 이들의 비판이 통찰도 없고 근거도 없다고 할 수 있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간하면서 첫 문장부터 ‘지금 구라파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 유령이 유럽뿐 아니라 온 세상을 삼킬 것이라고 호언을 하면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선동적 구호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역사는 노동자들이 단결 봉기해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게 되면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으로 기대했던 공산주의자들의 꿈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각국의 노동자들은 혁명의 전사가 될 정도로 의식있는 집단도 아니었고, 의식주 문제만 해결되면 편안한 일상에 안주하기를 원했으며, 선동에도 잘 휘둘려 도리어 자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충성스러운 역군들이 됐다.

이에 20세기 중반을 전후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이탈리아의 그람시 등은 공산주의의 실패를 철저히 반성한 이후, 고전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문화 마르크스주의를 주창하게 됐다. 공산주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선 과거처럼 일시적인 정치·경제·사회적 처방만으로 안 되고 긴 과정을 통한 종교·문화·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말하자면 정치혁명보다 문화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문화혁명의 주체는 누가 돼야 할까. 그람시에 따르면 혁명주체는 이제 고전 공산주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아닌 ‘소수 약자’의 연대 세력(solidarity)이 돼야 한다. 여기에는 그들이 기존 주도세력들의 특징이라고 나열한 서구·백인·남성·기독교·자본가·기성세대들과 반대되는 소수 인종·좌파 정치인·노동자·급진 청년세대· 페미니스트·비기독교 종교인· 범법자·성소수자 등이 포함된다.

그람시의 이런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개념에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들을 추가한 것은 1968년 학생데모의 선동가이자 대표적 좌파 이론가였던 마르쿠제였다. 그는 인간이나 세상에 대해 정말 단차원적으로 분석한 ‘일차원적 인간’(1964)에서 성소수자가 좌파 혁명의 주체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소위 ‘히피 혁명의 바이블’로 불린 ‘에로스와 문명’(1955)에서는 청년들에게 노동이나 책임이 없는 성적 쾌락의 삶을 살도록 속삭이며 이제는 노동 해방이 아니라 성적 해방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런 마르쿠제의 이론을 추종했던 히피혁명의 주역들은 그것을 마치 종교적 신조처럼 모시고 있었다. 20세기 페미니스트 운동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케이트 밀렛의 여동생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1960년대말 그의 언니를 비롯한 좌파여성 멤버 12명은 마르크스주의 신조를 홍보하기 위해 뉴욕에서 정기모임을 가졌다. 회합 때마다 마오쩌둥에게서 빌려온 소위 의식화 운동의 일환으로 이런 질문과 답을 외쳤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종류의 혁명입니까?” “문화 혁명입니다.”

“문화혁명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정을 파괴함으로써요!”

“어떻게 가정을 파괴하나요?” “일부일처제를 파괴함으로써요!”

“어떻게 일부일처제를 파괴할 수 있나요?” “음란 에로티시즘 매춘 낙태 동성애를 조장함으로써요!”

이것이 가정을 붕괴시키고 세상을 카오스(혼돈상태)로 끌고 가려는 마르크스주의들의 무서운 전략이요 추한 민낯이다. 어디 이들 뿐이던가. 신마르크스주의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던 루카치도 마르크스주의를 사회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전략으로 성적 쾌락을 지향하는 성교육을 시행했고 성해방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조차 무슨 대단한 인권운동처럼 포장돼온 동성애 흐름, 차별금지법, 퀴어이론, 그리고 젠더 이데올로기 등의 사상적 뿌리는 문화마르크스주의이고 그것은 사회주의 문화혁명과 직결돼 있다.

실상은 이러한데 인권위원장을 다룬 어느 인터넷 글을 보니 ‘후보자가 언급한 그람시와 20세기 초에 등장한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단 한 번도 소수 성애를 사회주의, 공산주의 혁명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한 적이 없다’고 적고 있다. 정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무지의 극치에 가까운 주장이다. 그건 인권위원장이 던진 말이 아니라 자신들이 떠받들어 온 이념적 선생들이 이미 수도 없이 내뱉었던 문화 마르크스주의의 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