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논의로 의정갈등 해결을 위한 단초는 마련됐지만 의료계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고집으로 출발도 전에 암초를 만났다. 정부·여당은 올해 입시부터 적용되는 정원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지만 의사단체가 끝내 협의체에 불참할 경우 논의 테이블이 차려진다 해도 실효성 있는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게 딜레마다.
여당은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대란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최대한 신속히 협의체를 띄우겠다는 입장이다. 추석 전 의료계를 제외한 여·야·정 협의체 만이라도 일단 꾸려 논의를 시작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민의힘 한 지도부 인사는 8일 통화에서 “모처럼 생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며 “필요할 경우 여·야·정이 먼저 만나고 의료계의 동참을 요청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협의체 동참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는 2025학년도와 2026학년도 의대 증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2027학년도 정원부터 재논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부 발표를 보고 준비해온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내년도 정원 재논의는 불가하다”며 “대통령실이 ‘2026학년도 원점 논의’로 한발 물러선 만큼 의료계도 현실적인 대안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일단 협의체 구성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분위기다. 다만 의사단체가 빠진 ‘선(先) 협의체’ 구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기류도 읽힌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핵심 목표는 의료대란 해소인데, 의사단체 참여 없이 여·야·정만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정부가 여·야·의·정 협의체와 증원 재논의가 2026년 증원 유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는데, 본격적으로 재논의할 수 있다던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라며 “윤석열정부는 응급실 뺑뺑이로도 모자라 이제 협의체마저 뺑뺑이를 돌리려 하느냐”고 지적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추경호 국민의힘·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국회에서 회동하고 협의체 구성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실무 조율은 김상훈 국민의힘·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통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르면 이번 주 초에 협의체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 국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 및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 등이 협의체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여·야·의·정 주체별로 3~4명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여당은 이와 함께 의료계 인사들과의 비공개 회동 등을 통해 협의체 참여를 설득한다는 계획이다.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응급 진료 담당자 등을 포함해 최대한 많은 의료계 종사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겠다는 구상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자창 최승욱 이강민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