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이사 갈 집 매매 계약서를 쓴 A씨는 최근 잇단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제한 조치에 걱정이 커졌다. 지금 사는 집을 팔고 그 돈에 대출을 더해 잔금을 치르려 했지만 일부 은행에서 ‘갈아타기’ 주담대까지 막았기 때문이다. A씨는 “다음달이 잔금일인데 자고나면 바뀌는 정책을 따라가기도 벅차다. 아직 대출받기 전인데 나도 못 받는 건지, 주변의 말도 다 다르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대출 한도와 만기 축소 등으로 주담대를 제한해온 은행들이 1주택자에 대한 대출 제한 조치를 강화하면서 유주택자들의 대출 문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1주택자의 ‘주택 처분 조건부 주담대’, 일명 ‘갈아타기 주담대’도 금지되면서 이사를 앞둔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갈 곳을 잃은 주담대 수요는 신용대출 등으로 번지고 있지만 정부가 신용대출까지 조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10일부터 신규 구입 목적 주담대를 무주택 세대에만 허용하기로 했다. 특히 유주택자가 갈아타기를 위해 기존 주택 처분을 서약하는 경우에도 주담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이 같은 1주택자에 대한 주담대 제한 조치는 지난 1일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다른 은행으로 번지고 있고, 강도도 세졌다. 먼저 1주택자 주담대 제한에 동참한 KB국민은행, 케이뱅크는 갈아타기 주담대를 허용했었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이 같은 조치에 불만과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 예비 차주는 “정부 눈에 들려고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더 센 대출 제한 조치를 내놓는 느낌”이라며 “실수요자들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일단 (대출) 막고 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집 가진 게 죄냐”는 불만도 나왔다.
실수요자를 외면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우리은행은 가계대출 관리 강화 대책 발표 일주일 만인 이날 예외 조건을 발표했다. 부모 등 가구원이 1주택자여도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1주택자 주담대, 전세자금대출 제한에서 제외된다. 대출신청 시점 2년 내 주택을 상속받은 경우도 예외다. 전세자금대출 취급 경우도 명확히 했다. 수도권 지역으로의 직장 변경, 수도권 학교로의 자녀 진학, 수도권 내 통원 치료 등이 이에 속한다.
금융 당국도 실수요자 보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 4일 실수요자들을 만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0일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한다.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 등을 함께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KBS 방송에서 “최근 실수요자 중심으로 가계대출 및 부동산 대출이 늘어난 부분이 있고, 속도가 좀 빠르다”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속도를 조절하고 적정한 유동성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시장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 당국은 주담대를 제한하면서 풍선효과로 늘어난 신용대출에 대해 추가 조치를 고려 중이다. 지난 5일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03조9321억원으로 지난달 말(103조4562억원)보다 4759억원 증가했다. 영업일 기준 나흘 만에 지난달 증가액(8495억원)의 절반을 넘겼다. 은행들의 주담대 조치에 더해 이달 들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가 시행된 후 대출 한도가 깎이자 신용대출로 수요가 몰린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 당국은 일단 주담대 규제 풍선효과가 어디까지 번질지 주시하면서 저축은행 신용대출이나 카드사 카드론까지 하루 단위로 점검할 계획이다. 모니터링 결과 신용대출이 계속 늘어나면 대출 한도를 연 소득 내로 묶는 소득대비대출비율(LTI) 적용도 고려 중이다. 해당 조치는 이미 국민과 신한이 하고 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