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이 자리 잡은 전남 순천시 매산등선교마을 일대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성지순례 코스로도 제격이다. 다섯 개의 코스로 구성된 1.97㎞에 이르는 순례길 곳곳에는 1913년 미국 남장로교 순천선교부가 터를 잡은 이래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체계적인 기획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박물관 주변에 조성된 순례길 코스 덕분에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은 연간 2만명 넘는 방문객을 맞는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수년 전까지만 해도 연간 최대 4만3000여명이 찾았다.
이 순례길을 기획한 김상현(46) 순천시청 학예사는 8일 “순천시는 전남지역의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지역이라 선교자원과 유품, 문화재 등이 다양하고 풍부하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더하고, 관광자원으로 연계한 것이 효과를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역적 특색이 있는 숨겨진 문화유산의 발굴과 스토리텔링을 덧입힌 콘텐츠화, 안정적 수익구조라는 3박자가 잘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의 이런 사례는 한국교회가 전국 곳곳에서 운영하는 기독교 역사기념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물론 국비 지원을 받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되는 박물관을 일반 기념관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박물관 운영에 담긴 운용의 묘와 노하우, 전략을 벤치마킹해서 잘 적용한다면 한국교회의 기념관 사업도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다고 본다.
김 학예사는 “높아진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체계적인 전략에 따라 기념관 설립부터 운영 방안까지 연구해야지 안일하게 준비해서는 안 된다”며 “오랜 기간 유산의 가치가 축적되고, 전시 프로그램이 쌓이면서 기념관의 가치도 올라가는 건데 한국교회의 많은 기념관이 그런 축적의 시간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미국의 경우 유산의 체계적인 수집과 보존, 연구에 더해 이야기까지 덧입혀져 기념관 사업이 점차 성장한다. 반면 한국은 이런 과정 없이 기념관부터 짓고 보자는 식인 데다 개인과 개교회 역량에 좌지우지돼 지속성이 약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충남 서천의 한국최초성경전래기념관. 성경이 한국에 최초로 전래된 곳이라는 지역 특유의 문화유산에 이야깃거리가 더해져 대표적인 성지순례지가 됐다. 또 이 기념관은 서천군청으로부터 운영비의 60%를 지원받아 운영되며 나머지는 입장료 등 기념관 자체 수익과 후원금 등으로 충당하는데 지난해에만 3만4000여명이 방문했다. 2016년 개관 후 지금까지 23여만명이 다녀갔고, 41억원 넘는 지역경제 창출 효과를 거둬들이며 서천군의 지역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했다고 평가받는다.
기념관장인 이병무 목사는 “우리 기념관만이 가진 유산을 어떻게 스토리텔링하고 재해석해 방문객에게 감동과 만족을 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한다”며 “특히 지역사회와 계속해서 소통하고, 군청 등 지역 행정기관과 머리를 맞대면서 기념관과 지역사회가 긍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지속해서 토론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기념관 사업이 지속되려면 유산을 개인이나 개교회가 사유화하는 일에 매몰되지 말고, 한국교회 공동의 재산으로 여기며 지속 가능한 보존을 함께 모색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허은철 총신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한국교회의 심도 있는 근대기독교유산 연구를 바탕으로 그 가치를 재조명해 사회와 학계가 보존과 지원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며 “특정 교회나 집단이 자신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한국교회 공공 유산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 유산을 계속 발굴·보존하며 그 가치를 높여나가고, 기독문화유산을 복음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