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꿈과 현실의 상호작용

입력 2024-09-09 00:35

우리는 흔히 현실을 기반으로 꿈이 상영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파편들이 꿈을 구성하는 까닭이다. 현실에서 발생한 사건과 감정들이 꿈속에 등장하기에 꿈이라는 것은 현실을 원료로 하는 부산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집 검정색 고양이 ‘볼이’를 처음 데려왔을 무렵 이런 꿈을 꿨다. 당시 볼이는 2개월 된 아기 고양이였다. 꿈속의 어떤 방에 나와 볼이가 함께 앉아 있었다. 그 방에는 냉장고 상자 같은 커다란 박스가 함께 놓여 있었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스 안에 들어갔다 나오면 고양이도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안내 방송이었다. 갑자기 볼이가 냉장고 박스 안으로 후다닥 들어가더니 한참을 박스 안에서 부스럭거렸다. 이내 박스의 들썩거림이 멈추고 안에서 너무 귀여운 얼굴의, 분내 나는 두 살 정도의 아기가 기어 나왔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이마가 땀으로 젖어 머리카락이 온통 들러붙어 있었다. 아기는 너무 힘들다는 듯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더니 나를 바라보며 “나 볼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사실 그 무렵 나는 고양이를 조금 무서워하고 있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어 낯설었고 밤마다 희번덕거리며 빛나는 검은 고양이의 눈에서 그 영혼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꿈을 꾸고 난 이후 고양이에 대한 나의 감정은 온전한 사랑의 마음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나 볼이”라고 말하던 사랑스러운 아기의 얼굴이 고양이를 볼 때마다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실이 꿈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꿈에 의해 현실이 재구성되기도 한다. 나는 꿈과 현실의 이러한 상호작용이 삶의 무척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꿈과 현실 사이의 위계는 사실 존재하지 않으며 그 둘은 우리 삶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층위들일 뿐이다. 그 꿈을 꾸었기 때문에 내가 고양이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된 것처럼, 꿈에서의 경험은 현실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일부 구성한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