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그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몸 밖으로 물러섰던 가늘고 긴 그림자
바퀴에 짓이겨지는, 전율이 요동쳤다
그도 나의 피투성이 그림자를 보았을까
검은색이 가장 빨리 검어지는 순간이란
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의 정면
생에 첫 스포트라이트,
빛이 눈을 멀게 했다
내 앞에서 그는 지금 얼마만큼 멀리 있나
내 혼이 망설임 없이
그의 몸을 덮치던 날
전부가 어두웠고
그 빛이 전부였던
비명이 스쳐 간 짤막할 목젖 같은
공포가 아, 입을 벌리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토록 시집 '이후의 세계'에서
살해자이면서도 ‘피투성이 그림자’가 드리우는 피해자가 되는 로드킬의 순간을 시조가 아닌 듯한 시조에 담았다. 시조를 쓰는 시인은 말한다. “내 언어의 발걸음이/시조에, 고스란히 스며들기를/시조에게서, 아득하게 멀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