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따라 우리도 초토화”… 고속·시외버스 ‘울상’

입력 2024-09-06 00:04 수정 2024-09-06 00:04
연합뉴스

지난 3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터미널에 5분 간격으로 순천, 군산, 순창·강진발 버스가 차례로 도착했다. 28인승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은 5~8명에 불과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승객과 화물로 붐비던 버스터미널 풍경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7년간 터미널에서 일한 50대 A씨는 “예전에는 추석 연휴를 1~2주 앞두고 화물 배송량이 넘치면서 20m 넘는 배송 대기 줄이 생겼는데 지금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다”며 “일감이 눈에 띄게 주는데 매년 계약을 갱신해 일해야 하는 입장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지방소멸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자가용 이용 증가, 늘어난 고속열차 이용객 등의 이유로 고속·시외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이 급감하고 있다. 운송회사들은 경영난을 극복하려고 노선 감축 및 통폐합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더는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지방 버스터미널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이용객은 각각 2200만명, 8600만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3200만명과 1억4800만명 대비 각각 69%, 58%에 불과했다.

전국 고속버스 운영업체의 매출 총합은 2019년 5851억원에서 지난해 4354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전국 시외버스 운영업체의 매출 총합도 1조3896억원에서 9875억원으로 급감했다.

버스 이용객이 감소한 이유는 지방에 사는 사람 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A씨는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대부분이 중장년과 노인들인데 이마저도 점점 줄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고속열차 이용객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전북 노선을 담당하는 운송회사 소속 운전기사 임모씨는 “코로나19 기간에 자가용 이용이 늘어나면서 확 줄어든 고속버스 이용객 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또 KTX나 SRT 등 고속열차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중고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버스가 한 번 운행할 때 승객이 최소 12명은 탑승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요즘은 평균 6~8명 정도만 탄다. 기사들 사이에선 고속버스 산업이 초토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토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 버스터미널 34곳이 경영악화로 폐업했다.

70대 황모씨는 “버스를 탄 승객이 나 혼자였던 적도 있다”면서 서울과 지방뿐 아니라 지방 노선도 존폐 위기라고 전했다. 황씨는 “언제부터인가 전북 전주와 전남 영광을 오가는 버스에 경유지로 정읍이 추가돼 이동 시간이 늘었는데 그나마 노선이 폐쇄되지 않은 게 어디냐”고 말했다.

김정화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지방 인구가 소멸하는 상황에서 노선이 폐지되고 통폐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도 “최소한 필수노선은 유지될 수 있도록 보조금 지원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준 기자 1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