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간을 산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시계를 보는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사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이 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게 살아낼 수는 없을까.
책은 시간과 관련한 총체적이고 궁극적인 물음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저자는 “현대의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영적 시간 측정 이상 증세’를 겪는다”고 본다. 책은 이 증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치료적 성격을 띤다.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비법은 따로 없다. 대신 저자 본인이 그간 연구한 현상학과 교부철학 및 신학, 신앙 경험에서 우려낸 성찰을 안내한다.
저자의 제안대로 시간을 산다고 할 때 성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무한에 직면하는 인간의 유한성이다. 흔히 떠올리는 죽음뿐 아니라 역사성과 공동체성 등도 인간의 유한성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이런 점에서 “‘영적 시간 지키기’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역사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자각하고 우리의 시간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관한 문제다.” “우리 정체성은 걸어간 길과 걸어가지 않은 길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저자의 말대로 나와 우리, 신앙의 선배가 걸어간 길과 걸어가지 않은 길을 깊이 성찰할 때 과거 속에 아로새겨진 그리스도의 길을 볼 수 있다.
이 길은 어떻게 성찰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일종의 교차적 사유를 제안한다. “교회의 예전”과 “성육신적 시간은 우리가 시대를 가로지르는 사귐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준다”. 성육신의 계시는 2000여년 전의 일을 오늘날 우리에게 재연한다.
공동체적 예전으로 성육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고유한 실존을 살아가는 시간적 존재다. 시간의 흔적은 우연히 내게 영향을 미치고 그 가운데 과제와 짐을 던져준다.
저자는 이렇듯 인간이 시간에 던져지고 그 안에서 수행된 것을 짊어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게 전한다. 또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한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교회의 시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자기의 실존, 특히 고통과 상실의 흔적도 사유해보길 제안한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기억하는 훈련’에 몸을 맡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닿으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