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일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은 지속 가능성에 방점이 찍혔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과 재정 안정을 강조하는 구조개혁 방안을 함께 추진해 기금 소진 시점을 최장 32년까지 늦추도록 한다는 것이다. ‘연금개혁 골든타임’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재정 안정 방안에 비해 소득 보장안이 약해 노후 보장을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13%와 42%로 올리고, 기금수익률 목표를 1% 포인트 높인 5.5%로 설정할 경우 기금소진 시점은 2072년까지 늘어난다. 현행 보험료율 9%와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때 소진 시점인 2056년보다 16년 늘어나는 셈이다.
정부는 여기에 인구나 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재정 안정성을 더 높인다는 계획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거나 연금 부채가 자산보다 커지면 보험료율을 올리거나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방식이다. 현재는 소비자물가 변동률만 반영해 받는 돈을 늘리거나 줄이고 있지만, 앞으로는 인구 변화를 연금액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개혁안에 더해 급여지출이 보험료 수입보다 많아지는 2036년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한다고 가정하면 기금 소진은 2088년으로 현행보다 32년 더 연장된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24개국에서 자동조정장치를 운영 중이다. 일본은 임금상승률과 물가상승률 등을 토대로 인상분을 정하는 대신 3년 평균 가입자 감소율, 평균 수명 증가율을 차감한다. 핀란드는 기대수명의 증가만큼, 독일은 제도부양비 변동만큼 연금액을 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소득보장론 쪽에서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시 실질적인 연금 수령액이 깎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용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게 되면 실질적인 연금 수령액이 20%가량 깎이게 된다. 소득대체율을 줄이고 자동안정화 장치까지 도입하는 것은 소득보장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적어도 낸 만큼은 돌려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저출산, 고령화 영향으로 다른 국가들도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고 이제 우리도 도입할 때가 됐다”며 “원래 100만원을 받는 경우 물가가 3% 인상되면 3%까지는 아니더라도 2.5%까지는 더 줄 것이기 때문에 실제 액수가 깎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대신 구조 개혁을 통해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도 담겼다. 가입 기간 확대를 위해 의무가입상한연령을 60세 미만에서 65세 미만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독일과 영국은 67세 미만, 일본·캐나다는 70세 미만으로 두고 있고 스웨덴은 연령상한이 없다. 앞서 공론화위원회에서도 의무가입상한연령을 만 65세 미만으로 상향하고, 수급개시연령과 일치시키는 방안에 대해 80.4%가 동의한 바 있다.
다만 보험료를 내려면 경제활동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맞물려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독일과 영국, 캐나다, 스웨덴은 법정 정년이 없다. 일본은 정년(60세)과 의무가입상한연령 간 차이가 10년이다. 정부는 이번 개혁안 논의 과정에서 연금 수급개시 연령 인상은 검토하지 않았다. 현행 연금 수급 연령은 2033년까지 65세로 연장된다. 이스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의무가입상한연령을 상한하는 것은 수급 연령(65세)과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또 기금운용 수익률 목표도 현행 4.5%에서 1% 포인트 높인 5.5%로 설정하기로 했다. 수익률을 1% 포인트 올리면 보험료율을 2% 포인트 인상하는 것과 유사한 재정 안정 효과를 낼 수 있다.
김유나 이정헌 기자 spring@kmib.co.kr